얘기함 이야기 공간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과 이야기 해요!

형제 자매를 잃은 사람들을 위한 공간
캐럿당근
오빠!!!
나 술 마셨어!!! 술 마시니까 기분이 더 복잡해 너무너무 보고 싶어 어제는(12시 지났으니까~) 3재 되는 날이라 또 절에 다녀왔어 보이는 곳마다 들어가서 절하고 왔는데 진짜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 안 울려고 참았는데 그러다 보니까 방석에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고 오빠랑 한두번 같이 갔던 절인데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지!!! 지난주에는 두 곳에 절을 했는데 오늘은 또 오른쪽에서 사람 나오시는 거 보고 거기에도 들어가서 절했거든 근데 거기는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는 장소인가봐 영정사진도 많고 위에 붙어 있는 이름들도 다 고인이시더라!!! 그전에도 많이 울었는데 또 들어가자마자 눈물이 뚝뚝 흘렀어 근데 그 방 다녀오니까 마음은 한결 나아지더라 오빠가 3번째 심판 잘했다는 증거일까??? 하긴 오빠는 착하니까 잘할 수밖에 없긴 해!!! 근데 나는 기왕이면 오빠가 더 잘가면 좋겠어서 다음주에는 지장보살 불상 있는 곳으로 가서 절할거야 나는 오빠가 행복하면 좋겠어 어떤 방식으로든
어제는 엄마랑 같이 엄마 사무실에서 같이 공부했어!!! 처음 가봤는데 시설 되게 깔끔하게 잘되어 있더라? 같이 반미 샌드위치도 먹고 커피도 먹고 그랬어 근데 중간부터 공부할때 계속 눈물이 떨어지는거야 안 우는 척하느라 혼났어 엄마가 왜 자꾸 코를 훌쩍이냐고 하는데 그냥 감기 기운 있는 것 같다 했어 나 진짜 생각보다 잘 지내지??? 생각보다 더 많이 슬프고(생각도 안 해 본 일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더 많이 우는데 또 생각보다 잘 내고 있어 오빠가 간 이후로 행복한 적은 없는데 나중에는 또 행복한 일이 생기겠지
오빠아아ㅏㅏㅏ 보고싶다 나 너무 슬프다 따라가고 싶다가도 나는 항상 오빠가 먼저 가는 길이 좋아보여서 다 따라갔는데 그래서 나도 그냥 포기할까 싶다가도 엄마가 나 보면서 억지로 버티는거 보면 내 앞에서 안 울려고 하시는거 보면 내가 차마 갈 수가 없어 내가 갔을때 부모님이 슬퍼하실게 너무 무서워 자식이 다 죽으면 따라오실 것 같애 그래서 못 가겠어
근데 오빠 나 진짜 오빠가 넘 보고 싶어 절에서 오빠가 나중에 나 결혼하면 내 딸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소원 빌었는데 내가 오빠를 알아볼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이게 될지 모르겠어 사실 나는 오빠의 환생보다는 그냥 오빠를 더 보고 싶은데 나는 오빠가 필요한데
오빠 진짜 잘 살고자 했더라 사실 그래서 더 원망스러워 그게 맞는거긴 하지만 그냥 오빠가 엄청 나쁜 사람이고 꿈도 희망도 없이 그냥 사는 사람이었으면 지금보단 덜 슬펐을텐데 왜 오빠는 너무너무 열심히
살고 잘 지내고자 노력하는 사람이었는지 왜 그러다가 갑자기 갔는지
오빠 게임 계정 29일 동안 오프라인이더라!!! 항상 3시간 이내 오프라인만 보다가 29일 오프라인 뜨는거 보니까 너무 이상해서 피시방에서 또 한시간 동안 울었어 오빠 계정이 로그인 안 돼 인증번호를 받으래 작년 말에는 오빠한테 전화걸었을때 오빠가 바로 인증번호 알려줬는데 지금은 못 그러는게 이상해 이상해 너무 이상해 내 오빠가 내 연락을 안 받을리가 없는데 이대로 갈리가 없는데 나 오빠 진짜 동경했는데 내 오빠의 끝이 진짜 이거일리가 없는데 진짜 너무 이상하다
오빠 오빠는 꼭 편안해야 해 행복해야 해 나는 오빠가 좋은 곳 가고 행복하게 살라고, 살아있는 사람이 간절하게 바라면 이런식으로 죽은 사람이 그나마 좋은 곳 갈 수 있다 해서 감정 덜 숨기고 매일 울고 슬퍼하고 오빠 제발 편하라고 간절히 바라니까 오빠는 꼭 행복해야 해 아무것도 못 느끼고 편히 쉬어야 해
그치만 나는 조금만 더 불행하게 살게 아직은 행복하고 싶지가 않다 내가 밥을 맛있게 먹는것도 아직은 많이 죄스럽다 그치만 이것도 괜찮아지겠지??? 보고 싶어 오빠는 내가 이렇게까지 오빠를 생각하는줄 몰랐겠지만 그래도 나 진짜 오빠 많이 사랑해 계속 진행형일거야 내 오빠여서 고마워
보고싶어 잘 지내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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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원(유족지원팀) 20240205091235
    안녕하십니까?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 활동가 행복소울지기입니다.

    오빠를 사랑하는 캐럿당근 님의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너무나 아픕니다. 그래도 오빠를 따라가겠다는 그런 마음은 부모님들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안
    겨주는 생각이니,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저는 시동생을 잃었습니다. 나이가 얼마 차이가 나지 않아, 박학다식하고, 다방 면에 예술적인 감각까지 있어, 모든 가족들의 버팀목이 되어 준 시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시동생이 하루아침에 고인이 되어버렸답니다.

    저의 신랑은 맏이였습니다. 동생들을 끔찍하게 보살피는 그런 형이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을 잃었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밤마다 본인이 운영하던 사무실에서 통곡 하였답니다. 어느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참다가. 밤새워 목놓아 울고, 아침 되면 퉁퉁 부은 눈으로 가족을 대했습니다.

    그런 행동을 알아차렸지만 제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우야지! 어떡하노? 가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나도 슬프지만, 신랑을 살려야 되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던 것 같습니다. 없는 돈에 살고 있는 집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더랬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사체 확인을 한 신랑은 사업을 접었습니다. 우울증이 심해져 잠을 청하면 시동생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어떤 날은 형하고 같이 가고 싶다고도 했다고 했습니다. 어떤 날은 돌아가신 시어머니 와 함께 나타나서 신랑을 괴롭혔다고 했습니다. 신랑은 죄책감에 시달렸던 것 같았습니다. 술을 안 마시는 날보다 마시는 날이 점차 더 많아졌습니다. 저희 가족은 괴로웠습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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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원(시러) 20240207035253
    부모님도 슬퍼하시겠지만 그런 부모님한테 거의 학대당하면서 자란, 하나 있는 제 오빠 잃은 저도 그런 사람들 못지 않게 엄청 슬픈데요... 댓글은 감사합니다만 부모님 생각하라는 말은 많이 들었으니까 그런 말은 안 해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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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원(시러) 20240207035512
    주저리니까 반응 안해주셔도 되니다 그래도 생각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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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럿당근
보고싶어
간만에 게임할까 고민중인데 오빠 계정으로 우리 둘 다 로그인 안 한 지 몇 주는 돼서 이제 다시 서버에서 인증번호 요구하려나 싶어 그럼 나 다시는 그 계정 못 쓰는데 어떡하지 항상 그 계정으로 로그인하면 마지막 로그인이 몇 시간 전이었는데 이제 안 그럴 거라고 생각하니까 숨이 막힌다 오빠 나는 아직도 지금이 안 믿겨 내가 돌 것 같애 아무리 그럴 겨를 없었다지만 내 생각 좀 해주지 그랬냐 바보야 오빠의 빈자리 하나하나가 너무 커 보고 싶어 보고 싶어 보고싶어 무뎌지고 싶은데 무뎌지고 싶지 않아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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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원(유족지원팀) 20240305184736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유족지원팀입니다. 답글을 기다리셨을텐데, 활동가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글을 늦게 확인하여, 작성해주신 글의 업로드가 늦어졌습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유족지원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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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원(유족지원팀) 20240305184938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얘기함 동료지원 활동가 ‘푸리야’입니다.

    오빠의 부재가 안 믿겨지고 오빠의 빈자리 하나하나가 너무 커 보고 싶고 무뎌지고 싶은데 또 무뎌지고 싶지 않은 캐럿당근 님의 글 한 줄 한 줄에 한참을 멈춰 있었습니다. 얼마나 보고 싶을까? 얼마나 간절할까? 지금 이 현실을 다 부정하고 싶을 텐데. 다 비현실적일 텐데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하나? 안타까움에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 로그인을 못하고 있는 캐럿당근 님의 모습은 8년전 제가 아들한테 ‘엄마는 너를 가슴에 묻지 않고 부활시켜 함께 걸어가고 같이 살아갈거야’ 약속했지만 희망일 뿐 하루하루가 힘들었던 기억이 생각났습니다.

    그 때 더 두려웠던 것은 현실을 인정하기 싫었음에도 아들에 대한 기억이 스물일곱 살에 멈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지금, 여기’ 아들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랬었는데... ~그랬지...” 하고 자꾸 과거로 돌아가야 하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캐럿당근 님이 ‘아무리 그럴 겨를 없었다지만 내 생각 좀 해주지 그랬냐 바보야’하며 오빠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모습은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매일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서둘러 갔니?’... 지금도 여전히 하루에도 몇 번씩 불쑥불쑥 찾아오는 질문으로 가슴은 온통 슬픔으로 출렁여 눈물이 쏟아집니다. 마음이 막 헝클어져 어찌할 바를 모를 때도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캐럿당근 님의 마음에 공감이 갑니다. 곁에 있다면 꼬옥 안아주고 싶습니다. 토닥토닥 하고 싶습니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히 옳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살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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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럿당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까
내가 오빠를 묻게 될까 잊게 될까 그럼 오빠가 쓸쓸하지 않을까 살아있을때에도 외로움 많이 타던 오빠였는데 나마저 오빠를 잊어버리면 오빠가 너무 슬프지 않을까 카페에서 공부하다가 한시간 가량을 계속 울었어 안 운 적이 하루도 없어 한달이 지나고 일년이 지나고 삼년이 지나면 그럼 나는 이 슬픔에 무뎌질까 분명 그러겠지 근데 오빠 나는 오빠를 잊기가 너무 싫어 이렇게 가버릴거면 왜 잘해줬냐 싶다가도 내 옆에 있는 동안 너무 좋은 오빠였어서 더 뭐라고 할 수가 없어 이런 나한테 오빠가 없을리가 없는데 진짜 이상하다 그치 오빠는 부모님 전화는 안 받아도 내 전화는 바로 받고 한달에 두세 번 정도는 이유 없이 나한테 전화해서 오래 통화했는데 왜 카톡도 안 보고 전화도 안 받을까 내 오빠가... 오빠를 잊기는 싫은데 울때마다 오빠가 가버린 걸 인정하는 느낌이야 여기에서 오빠랑 커피 사서 영화 보러 갔고 저기에서 오빠가 맨날 어니언링 먹었고 그 양식집 라자냐를 오빠가 너무 좋아해서 내 집에 올때마다 그걸 종종 시켜먹었고...... 내 집에 있을때 아파서 토하다가 충혈된 눈으로 나를 바라봤고 밤새 헛구역질 소리가 들렸고 오빠가 힘들어했고 나한테 미안해했고
자기가 공부 열심히 할때 아무도 몰라준게 싫었다고 나 공부할때 항상 고생한다 해주고 용돈도 자주 보내주고... 엄마아빠가 용돈 안 주니까 오빠도 돈 없으면서 매달 나한테 돈 보내주고... 내가 더 잘해야 했는데 그거에 익숙해져서는 아 ㅋㅋ 너무 속상해 오빠가 첫 아이패드 사고 돈 버는 보람이 있다 한게 생각나 나한테 브롤스타즈 게임 같이 하자고 한거 생각나 질려도 몇번은 더 해줄걸 오빠는 쓸쓸해서 온갖 게임에 다 손을 댔는지 모르는 게임이 없더라 사실 나는 그것도 마음 아팠어
오빠 진짜 이상해 다 꿈인 것 같아 현실이 아닌 것 같아 오빠 4월에 친구들이랑 같이 여행도 간다 했다며 나랑도 2월에 봤어야지 다음달에 생일이잖아 오빠 나 오빠 생일이 너무 무서워 내가 감당 못 할 것 같아 부모님 앞에서도 줄줄 울면 어떡하지
온갖 만약의 상황이 생각나 만약 우리가 에버랜드를 갔다면 템플스테이를 갔다면 서울에 티오가 나서 오빠가 본가로 내려가지 않았다면 10월 이후에 자취방 놀러오라는 말에 그냥 한번쯤은 놀러갔더라면 오빠가 조금은 덜 외로웠을까 그럼 이런 상황을 더 더 미룰 수 있었을까
오빠 사실은 나 엄마랑 아빠가 소중하긴 한데 말이야 오빠가 훨씬 좋았어 오빠가 가버리니까 가족 세명의 단톡방이 생겼어 오빠가 받아야 하는 관심과 사랑 같아 왜 오빠가 가버린 이후에야 나한테 잘해주시는걸까
부의금 받은게 오빠의 목숨값 같아 오빠가 모은 돈을 나한테 준다는데 돈 말고 그냥 오빠가 있으면 좋겠어
장난기 많던 오빠가 그리워 동명이인 아이돌 데뷔했을때 오빠가 그 아이돌인척 인사하고 다녔던게 생각나 물론 다들 엄청 식겁해서 잔소리했지만 ㅋㅋ 보고싶다 오빠가 없는 세월을 어떻게 사냐 나는 목숨도 질기다는데... 오래 살고 싶지도 않은데 오래 살 운명이라 하는걸 보면 이것도 참 지독한 벌인가 봐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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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원(유족지원팀) 20240205091506
    안녕하십니까?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활동가 행복소울지기입니다.

    아무런 시그널도 없이 떠난 오빠는 나에게 야속하기만 합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떠나간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싶을 때가 저도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
    진을 꺼내어보거나, 떠난 사람이 좋아했던 음악을 듣거나 합니다. 만약 생전에 오빠의 목소리가 담긴 음성파일이 있다면 들으면서 위안 삼아보는 것도 내가 버텨내는 방법이더라구요.
    그렇게 그리워하면서 듣는 목소리는 나의 눈물샘을 자극하여 본능적으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쏟아냅니다.
    그러면서 속까지 후련함을 느낀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시작해 보자'라는 굳은 결심도 하게 되더이다. 그러니 캐럿당근 님도 한번 도전해 보십시오.

    내가 그리워 했던 오빠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에 실망하지 마시고, 오빠의 선택에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그러지 말았으면 더 좋았을 것을.. 라는 원망도 들 것입니다. 그렇지만 캐럿당근 님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삶의 주인공은 자신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일수록 힘든 부분은 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족이 고통스러워하는 부분은 나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떠나간 오빠를 위해 내 삶의 계획에 새로운 굳건한 목표를 정해서 하루하루 버텨내는 삶에 최선을 다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나 또한 현재 힘든 상황이지만, 남아있는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내가 되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우리 그렇게 버텨내면서 힘들때에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얘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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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사랑
사랑하는 동생 노지에게...
사랑하는 내동생 노지
오늘은 다가오는 49제에 참석할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톡을 돌렸어.
시간이 흘러서 많이 안올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해줄것 같아 형이 많이 위로가 되.

너를 보러가면 너의 옆에 엄마도 보고 또 징징대다 와야겠다.
노지 형은 요즘 너를 신고했던 날 이후부터 슬슬 인정을 해가는 단계인 것 같아.
그래서 요즘 너무 힘들다.
우리 참 시도때도 없이 몇시간씩 걸으며 수다 떨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
걸을 때마다 어쩜 이동네에 너랑 안걸어본 길이 없는 건지
참으로 걷는 순간순간마다 니생각이 가득해.

형은 요즘 너네집 근처를 지나가야 할 때는 돌아서 가려한다.
네 생각으로 가슴이 너무 먹먹해질까봐...

노지야.
정말 네가 이세상에 없다는게 참으로 가혹한 하루하루가 지나고 있다.
아프단 말도, 슬프단 말도 어떠한 걸로도 형용하지 못할 무언가가
형을 짓누르고 짓누르다가 하루가 간다.

보고싶어. 너랑 엄마랑 셋이 데이트하고 밥도 먹고 그렇게 좀만 더 해보고 싶다.

해주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은데 그걸 해줄 사람이
곁에 없다는게 너무 슬프다.

너무 보고싶다. 진짜 미치도록 보고싶다. 이걸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는데
그냥 모르겠다. 보고싶다. 그립다.

몇 일전에는 친척동생들이랑 만났어.
그리고 어제는 니가 그렇게 좋아하던 아메리칸jw가 왔다.

집에와서 한동안 침울해하다 갔어.
아직도 믿기지 않는 듯 하더라.

노지야. 형은 정말 꿋꿋이 힘들어 해볼게
그렇게 쭉 아프고 힘들고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다가
언젠가는 그 슬픔이 마를 날이 온다면
그때부터는 노지랑 엄마랑 보기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볼게.

그러니 너도 형 응원 많이 해줘.
아버지도 잘 지켜주고...

사랑해 내동생 정말 형이 너무 많이 사랑해.
형 걱정하지말고 위에서 정말 많이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

형이 기도도 안하고 나쁘게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인다면
언제든 찾아와서 혼내줘. 정신차리고 건강하게 힘들어 할 수있도록...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

엄마!! 노지랑 잘 지내고 계세요.. 너무 잔소리만 하지마시고
같이 맛난거 많이 드시고 행복한 것만 하면서 지내고 계셔요.

우리 엄마랑 노지 내가 세상 제일 사랑해요.

노지 또 징징대러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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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원(유족지원팀) 20240305184656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유족지원팀입니다.
    답글을 기다리셨을텐데, 활동가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글을 늦게 확인하여, 작성해주신 글의 업로드가 늦어졌습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유족지원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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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원(유족지원팀) 20240305184700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얘기함 동료지원 활동가 ‘푸리야’입니다.

    동생의 49제에서 동생 노지님과 만나셨지요? 징징대셨어도 상관없고 그리운 노지님과많은 이야기를 하셨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동생 노지님한테서 응원 많이 받았기를 바랍니다. 그 힘으로 노지사랑 님이 씩씩하게 살아갈 날을 상상합니다.

    아들과 어느 날 ‘의식’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아들은 ‘기억도 의식을 갖추면 용기가 생기고 혼자라는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을 했었어요. 아들이 떠난 후 한참 후에 그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성당에서 아들을 위해 기도하거나 주일마다 봉헌하는 미사, 아들의 기일, 아들의 생일을 두려워서 피했는데 이제는 아들에게 집중해서 의식을 치루듯 하고 있습니다.

    아들 말대로 덜 외로웠습니다. 노지사랑 님에게도 49제가 동생 노지님께 집중하고 애도하는 귀한 시간이 되어서 마냥 슬픔의 시간만은 아니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들을 보내고 모든 게 의미없고 다 소용없다는 생각을 했었지요. 노지사랑 님처럼 모든 게 다 먹먹하고 하루하루가 가혹하고 무엇인가에 짓눌려 숨쉬기가 힘들 때도 있었고요. 어느 것도 의미가 없었지요. 물론 지금도 불쑥불쑥 그렇지만요.

    지난 번에도 그랬지만 이번에 노지사랑 님의 글을 두 번째 읽으면서 예전의 저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미어져 결국 또 울었습니다. 노지사랑 님 곁에 서 있고 싶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슬픔을 나누고 싶고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아들이 사무치게 보고 싶을 때,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글을 읽고 또 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무덤이 아니라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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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럿당근
바보탱
오빠가 간 지 벌써 10일 가량이 됐어 나는 아직 많이 울어
보고 싶어 왜 세상은 우리 가족을 그렇게 미워할까 왜 우리는 그렇게 힘들었을까 그래도 잘지내보겠다고 긍정적으로 살던 우리였는데 오빠 나 이제 긍정적으로 살기가 너무 힘들어
이럴거면 왜 나한테 그렇게 잘해줬냐 싶다가도 같이 있었던 시간이 너무 좋았어서 뭐라고 할 수가 없어 근데 오빠 그 좋았던 시간이 다시 없다는게 나 아직도 너무 안 믿긴다 왜 그럴까 오빠가 심심하다고 나한테 전화하고 나한테 오빠만 나를 좋아한다고 징징거리고 삐친척하고 그랬던게 아직도 아른거려
오빠 방을 치울때 많은 생각이 들더라 오빠 진짜 가고 싶었나봐 나한테 죽고싶다고 종종 말할때 가볍게 듣지 말걸 오빠는 오빠라서 괜찮을 줄 알았어 그래도 오빠 점점 괜찮아지고 있다 해서 진짜 괜찮아질 줄 알았어 이게 마지막일 줄 알았더라면 12월에 오빠한테 내 집 그냥 오라 할걸 전화 받을걸 오빠가 자취방 놀러오라 할때 놀러갈걸 다 미련과 후회로 남아 보고싶어보고싶어보고싶어 진짜 미워
나랑 에버랜드도 가고 템플스테이도 가고 해외여행도 가야 하잖아 엄마가 몽골 보내준다 했잖아 나 에그타르트 못 먹겠어 오빠가 자취방에 에그타르트 가득 쌓아둔거 보고, 활력증진제, 비타민, 프로틴 음료 사둔거 보고 열심히 살고 싶었구나 싶어서 그냥 내가... 모르겠어...
일하는 곳에서 오빠 상 당했다는거 거짓말인 줄 알았대 오빠 내가 알바하는 곳 음식 좋아했잖아 맛있다고 했잖아 우리 사장님 한번 뵌 적도 있잖아 그래서 거짓말인 줄 알았나봐 오빠 나도 이게 거짓말이면 좋겠어
너무 답답해 오빠가 있으면 좋겠어 보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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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활동가입니다.

    보고 싶은 오빠와 이별하고 힘드신 중에 글을 남겨주신 용기에 감사를 드립니다. 캐럿당근 님께서 얘기함에 남겨주신 글을 잘 읽어보았습니다. 남겨주
    신 글 속에 오빠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있음이 느껴져 공감되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나는 아직 많이 울어보고 싶어’ 라고 하셨는데 캐럿당근 님이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상황에 계신 것은 아닌가 싶어, 염려가 됩니다. 아니면 다른 가족을 위해 슬픔을 참고 계시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면 마음에 쌓이고 쌓여 마음이 아플 수 있습니다. 오빠가 보고 싶고 그리울 때는 실컷 울어도 됩니다. 내 마음속 감정을 눈물로 슬픔을 표현해 주세요. 눈물을 통해 내 마음이 좀 더 감정이 완화되는데 도움 될 수 있도록 슬프면 실컷 울어주세요. 건강한 애도 과정이 될 수 있도록 슬프면 실컷 울어 마음의 감정을 표현하고 표출해주세요.

    오빠 방을 치우면서 오빠와 함께한 기억들이 떠올라 더 오열하지는 않았을까 방을 치우면서 더 그립고 보고 싶은 오빠가 떠올랐을텐데 그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찢어지는 것 같았을까? 같은 아픔을 겪었기에 캐럿당근 님 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고 공감이 되고 함께 아팠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떠나보내고 후회하고 자책을 합니다. 이 세상을 떠나게 된 이유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에도 우리는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일 줄 알았더라면 12월에 오빠한테 내 집 그냥 오라 할 걸 전화 받을걸, 오빠가 자취방 놀러 오라고 할 때 놀러 갈
    [전체 내용은 글쓴이에게만 보입니다.]
와와치
코뚱땡이에게
코뚱땡이에게

안녕, 잘 지내고 있니?
어느덧 해가 바뀌고 24년이 됐어

너가 없이 맞이하는 새해는 괜히 씁쓸한 기분이 들어

어때 23년의 크리스마스는 재미있게 잘 보냈고
24년의 새해 첫날은 맛있는걸 많이 먹었니?

나는 최근에 훠궈를 먹으러갔는데 너가 좋아했을 맛이였어 같이 갔으면 좋았는데 아쉽다

며칠내내는 너가 해줬던 김치볶음밥이 생각나서 해먹었는데 너가 말한대로 나는 똥손이라 그런지 영 너가 해준 맛이 나지는 않는거 있지?

또 꿈에는 너랑 집안일을 하던 꿈이 나오는데 꿈이 아니라 현실에 있는 기분이여서 묘했어 꿈인건 아는데 꿈이 아닌 거 같고
요즘 내가 그렇게 현실 자각 없이 살아서 그런가봐

최근에 회사에서는 속상한 일이 있었는데 이럴 때 너가 있었다면 우리언니 누가 속상하게 하냐면서 시원하게 화내줬을텐데 너한테 전화를 걸어봐도 없는 번호라 떠서 더 속상하더라

마음이 더 힘들어지는게 이렇게 살면 안될 거 같아서 다음주에 병원도 예약해놨어
너가 어떤 무슨 마음으로 그랬는지 이해가 가더라고
믿을만한, 나를 품어 줄 줄 알았던 사람들에게 받는 그 눈빛이란 참 곤욕스럽고 수치스럽고 또 죽고싶게 만들더라고 그걸 내가 왜 못알아채서 이제야 알게 된 건지 후회가 많이 돼

그래도 거기서는 예전에 활짝 웃던 것처럼 밝게 웃고있지?
나는 너가 늘 아름답게 살지는 않아도 아름다울때죽으라는게 아니였는데
내가 모나서 미안해

너가 가고 나서 추천 사진에는 온통 너가 떠 마음이 아프면서도 좋고 슬프고 그렇네

내 동생 많이 아픈 만큼 안아프게 행복하게 있어
새해 복 많이 받아
너에게 또 놀러갈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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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와치 님,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얘기함 동료지원 활동가 ‘푸리야’입니다.

    작년 9월. 와와치 님의 글을 읽으며 가슴이 꽉 막혔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와와치 님이 덜 힘들게 이 시간을 통과했으면 했던 간절한 기억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급한 마음에 와와치님께 횡설수설했던 미안함과 함께요.
    그런데 다시 와와치 님을 만나니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씩씩해져 있기를 바라면서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저는 지난 성탄 이후 주로 집안에서 겨울을 보냈습니다. 일부러 꼼짝 안 하고 집에만 있었습니다. 저의 몸과 마음을 많이 이완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올해 2024년은 작년보다는 좀 더 씩씩하고 나자신에게도 더 솔직하게 살면서 아들을 애도하며 살아가게 해 달라고 소망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몸이 먼저 알아차렸습니다. 이번 주에 있는 아들 생일을 저는 담담하게 맞이하려고 했는데 몸이 먼저 아파 왔습니다.
    처음에는 이유도 모른 채 왜 이러지? 노화 과정인가? 하며 많이 외롭고 슬펐습니다. 꼼짝도 하기 싫다보니 더 무기력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애도와 그의 엄마에 대한 애도는 아예 출발부터 다른데 무슨 공감이 있으랴 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슬픔은 다 같았습니다. ‘그 사이 내가 했던 일들은 다 쓸데없는 짓들이다. 내 슬픔은 삶을 새로 꾸미지 못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내 슬픔은 사랑의 끈이 끊어졌기 때문이다.’는 말에서 이번에 제 몸이 아프고 막연히 슬펐던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전체 내용은 글쓴이에게만 보입니다.]
노지사랑
사랑하는 동생 노지
노지... 어느새 너가 간지 한달이 되어간다.
형은 오늘 너가 하늘로 간 신고를 하러 가.
너가 가고 한번도 서류봉투를 열어보지 않다가
오늘 처음으로 서류봉투를 열어봤어.
진단서, 장례식장계약서, 화장서류 등 많은 서류들이
이 세상에 네가 없음을 얘기하더라.

그런데도, 형은 아직 믿기지 않아.
보고싶다. 동생아...
작년 7월 어머니를 보내고 어머니 신고를 하러 갔을 때는 우리는 우리었기에
형이 그 자리에서 어머니의 소천을 인정하는 내 이름 석자를 쓰는데 큰 위로가 되었어.
하지만 이제 형은 혼자 그 이름을 쓰러 가야한다. 오늘 만큼은 너무 원망스럽다 내 동생.

노지 잘 지내고 있어야만 한다.
형이 이렇게 힘들고 슬퍼하는 가운데 기도 열심히 하고,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와 너를 위해
그리고 이 땅의 나와 아버지를 위해 기도를 하고 있으니까.

보고싶어 진짜 요즘 들어 더욱 더 너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져만 간다.
가끔 가슴이 답답한 밤에 하늘을 보면서 담배를 피다 나도 모르게 발을 동동 구르고 가슴을 친다.
보지도, 만지지도, 부르면 달려오지도 못하는 너를 원망도 하다가 슬퍼도 하다가 형도 형을
이제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우리 노지 만큼은 하늘에서 평안했으면 좋겠어...
아팠던 마음도 엄마 옆에서 잘 위로 받고

엄마 때도 그랬지만 너를 보내고 슬퍼만 하기에는 처리해야 될 일들이 너무 많아...
원망스러운 이놈아!!! 형한테 이건 너무 했어 ...

노지 형 오늘 신고하는데 옆에 와있어
형 정말 힘들 것 같고, 무섭다.
형 많이 힘들 것 같은 날인데 오늘은 꿈에 나와줘 .
보고싶다 노지.
진짜 사랑해.

또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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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활동가입니다.

    동생을 하늘로 보내는 신고를 하면서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드셨을지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쓰리고 아팠습니다. 신고해야 하는 법적 기한으로 하늘로 보내는 신고를 하지만 우리는 영영 그 이름이 함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 수도 있을 것 같아, 신고하는 것을 미루고 또 미루며 한 달을 다 채워 하늘로 보내는 신고를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이름이 사라지고 텅 비어버린 공간을 보면서 또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합니다. 어머니를 여의고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같은 신고를 해야 한다는 것에 마음이 비통하고 무너질 것 같은 마음이셨을 것입니다. 함께 옆에 있었던 동생이 없고 이제는 노지사랑 님 혼자서 신고를 하고 그 슬픔을 혼자서 감당해야 했기에 더 힘드셨을 것입니다.

    저도 아이와 단둘이 나와 있는 서류를 보면 많은 생각이 듭니다.
    어쩌다 내가 세대주가 되고 어쩌다 가장이 되었을꼬 하면서요. 아직도 서류를 보면 여전히 익숙하지가 않고 그 빈자리가 너무나도 보고 싶고 그립고 그립습니다. 두 번째 줄에서 첫 번째 줄로 가니 이제는 세대주와 가장이라는 무거운 책임감이 나를 기다라고 있었습니다. 세대주와 가장을 해 보면서 배우자가 짊어졌을 무게도 느껴보면서 많이 힘들었겠구나 하면서 배우자의 마음도 이해하게 되었고 이 세상의 모든 세대주와 가장에 대해서도 위대하다는 생각과 존경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전 상황상 서류처리가 빨리 되었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신고를 빨리하게 되었습니다. 신고하면서도 배우자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들었지만
    [전체 내용은 글쓴이에게만 보입니다.]
팅커벨
보고싶은 내동생
니가 간지도 9일째야... 아빠가시고 이제 1년인데... 왜 그런거야 ㅠㅠ
아픈 엄마가 충격에 어떻게 될까봐 너의 죽음을 알리지도 못했어...
장례도 무빈소로 형제들끼리만 치르고...엄마가 알면 안되었기에 ㅠㅠ
이제 엄마는 어떻게 하면 좋으니...
엄마까지 가면 언니는 어떻게 하라고 그랬니...
그렇게 힘들면 사실대로 털어놓지... 니가 솔직히 말하고 도움을 요청했다면 다들 도와줬을 텐데... 왜 그런 바보같은 선택을 했어... 니가 그런 시도를 했을 때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했을 때 난 이제 괜찮을 줄 알았어...
내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좀 더 따뜻하게 용기를 줬어야 했는데...나 때문인 것만 같아 너무 괴롭다ㅠㅠ
내가 막을 수도 있었는데 하는 마음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해... 남자친구는 어쩌란 말이냐... 너무 힘들어 해... 조금만 더 견뎠음 행복한 결혼 생활도 했을텐데..
너무 힘들어... 누구한테 말 할 수도 없고 어딜가도 내 슬픔을 꺼내놓을 수 없어서 외딴섬에 고립된 기분이야...
엄마한텐 당분간 해외에 나갔다고 했는데...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까....
불안하고 절망스럽고... 우린 이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니가 그립고 안타깝고 미안하고 그러면서도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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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십니까?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활동가 행복소울지기입니다.

    팅커벨 님의 사연을 읽고, 저와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너무나 가슴이 메어오네요. 시동생이 우리 곁을 떠났을 때 저의 남편이 시신을 확인하였고, 그 사실을 혼자 계신 시아버님에게 얘기를 못하다가 3년 후에 얘기를 하였답니다. 급성 암으로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협심증 및 만성질환을 앓고 있던 아버님마저 큰일을 당하게 된다면, 신랑 또한 연쇄반응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신랑은 너무나 괴로워했습니다. 맏이로서 동생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책과 맏이로서 동생의 죽음을 아버지에게 말을 못하는 괴로움으로 3년을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 날 꿈에 시동생이 행복한 모습으로 나온다는 아버님의 얘기를 듣고, 용기를 내어 신랑은 울면서 아버님께 말씀을 드렸드랬습니다.
    세월이 약인 것일까요? 아버님은 묵묵히 얘기를 들었고, 저희 신랑에게 고맙고, 힘들었겠구나! 라는 말로 대신해 주셨습니다.

    벌써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가슴이 미워지는 고통은 사라졌지만 또 다른 상처가 저의 발목을 잡고 있지만, 남아있는 유가족들의 상처가 깔끔하게 지워지지 않는 다는 사실을 누구든지 공감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 상처를 흉터로 남겨두고, 나를 사랑하는 힘을 키우시기를 희망합니다. 가족이라고 아픈 상처를 다 알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상처로 인해 더 큰 상처를 가져야 한다고 시기유예를 시켜주는 것도 한 방법일 듯 합니다.

    그러니 팅커벨 님의 심신을 먼저 강화시키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어머니께 말씀드리는 것이 어떠한지 경험자로서 얘기를 해 봅니다.
    하루
    [전체 내용은 글쓴이에게만 보입니다.]
노지사랑
사랑하는 동생 노지
노지~ 형이야.
지금은 24.01.06 오전 01시 04분을 지나고 있어.
이번 주는 한 주간 너의 재산을 정리했어.
인출하면서 참 내 동생 이 돈들 얼마나 힘들게 모았을지
형은 아니까 얼마나 맘이 쓰리던지...
이 돈들 모아서 차도 사고 결혼도 하고 진짜 하고 싶어했던 것들이 많았던 아이인데
그렇게 형이랑 같은 욕심을 같이 이루고 싶어했던 내 동생인데.
지금도 난 네가 없단 현실이 너무 차갑고 무섭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을 해봐도 어머니랑 네가 없는 이 세상이 이해가 되지 않아.
그래도 아버지를 생각하며 힘을 내고, 옆에 항상 있어주는 친구들을 위해 제정신을 차리려 한다.
그렇게 하루를 원망과 부정 속에서 힘을 내길 반복하며 지내다가도, 저녁만 되면 난 또다시
너와의 마지막 순간에 서있게 된다.

차가웠던... 움직임이 없던... 너를 눕히고 그 옆에 앉아 꿈일거라고 하염없이 소리지르며 울던 그 시간에
형의 시간은 멈춰있어.

왜 그렇게 갔는지 왜 너를 하늘이 욕심 냈는지 아직도 난 이해를 못하겠어.

보고싶어 ...
엄마도 너도 정말 많이 보고싶어.
형이 좀만 더 노력해서 우리 가족 좀 더 여유롭게 만들어줄걸
내 여유가 우리 가족의 여유가 되기를 그렇게 바라고 살아왔었는데...
너도 알겠지만 형은 주변 모두가 나로 인해 행복해지기를, 같이 행복하기를 바랬었자나.
그랬던 목표들이 사라져버린 지금 형은 인생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고 있어.

이렇게 사는 걸 정말 너도 엄마도 원하지 않을텐데 그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데
나의 밤이 너무나도 날 괴롭게하고, 깨었을 때 이세상에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없단 현실이
너무 거지같고 화가나...

노지 형 너무 못났다 그치?
너도 형 이러는거 싫지?
그러니까 꿈에 좀 나와서 이런 나를 좀 혼내줘.
형 정신차리고 살라고 나 잘 지내고 있으니까 제발 정신차리라고...
엄마랑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는 모습도 형한테 보여주고
형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할 수 있게 해주라.

난 진짜 잘못 없다고 생각을 하다가도, 너에게 좀 더 위로가 되지 못했던 하루들...
그리고 마지막 날에 널 그냥 그렇게 보냈던 나를... 찢어 죽이고 싶게 싫다.

왜 그렇게 병신 같이 너를 보냈을까...
평소보다는 좀 더 나아보였던 너라 생각했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단걸 왜 몰랐을까...

노지... 사랑하는 내 동생
정말 너무 너무 사랑한단 말밖에 해줄 것이 없다.
그 사랑이 너에게 더이상 전달되지 못할 것만 같아서 그게 너무 한스럽고 답답해서 가슴이 아파.

이 세상 어딘가에 잘 살고 있을 것만 같은 내 동생
나는 네가 보고 싶어도 꾹 버텨내고 네 몫까지 진짜 열심히 살거야.
그러니 그런 나를 제발 칭찬하고 응원해주라.

형이 아직도 찝찝하고 답답한게 많아.
이 모든 것들 가슴에 품고 평생을 살다 우리 노지 만나면 그때 풀어낼래.
노지야. 형은 진짜 내 동생 믿어.
각자의 세상에서 잘 지내다가 우리 꼭 다시 만나자.
형이 진짜 너무 사랑해.
그리고 앞으로는 형 자신도 그만큼 사랑하면서 살아가볼게.

보고싶은 내 동생 오늘도 징징대는거 받아줘서 고마워.
사랑하는 노지 형이 또 징징대러 올게! 사랑해!
울 엄마도 내가 사랑해요! 아버지 내가 잘 지키다가 갈테니 먼 훗날 우리 가족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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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활동가입니다.
    노지사랑 님께서 남겨주신 글을 읽으며 동생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이 글자 하나하나에 다 녹아있는 것 같습니다.

    동생의 흔적을 정리하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셨을까? 얼마나 많은 그리움과 슬픔에 사무치고 계실까? 많이 힘드셨을 노지사랑 님의 마음이 읽어졌습니다. 떠나간 동생의 흔적을 정리하며 더 그립고, 더 많이 보고 싶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먼저 떠나간 가족의 흔적을 정리하는 일은 정말 많이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먼저 떠난 가족과 했던 시간, 기억들이 떠올라 더 사무치게 그립고 몸서리치게 보고 싶어 더 깊은 슬픔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아버지를 생각하며 힘을 내고, 옆에 항상 있어 주는 친구들을 위해 제정신을 차리려 한다’라는 글을 읽으며 노지사랑 님이 이겨내려고 엄청난 노력을 하고 계시는 모습에 울컥했습니다. 긍정의 메시지를 남겨주신 노지사랑 님께 감사가 되었고 일상으로 회복하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에 응원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잘살고 있을 것만 같은 내 동생 나는 네가 보고 싶어도 꾹 버텨내고 네 몫까지 진짜 열심히 살 거야’

    노지사랑님! 같은 아픔을 겪은 동료지원 활동가가 옆에서 함께 응원하며 꾹 버티며 동생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노지사랑 님을 칭찬합니다.
    노지사랑 님의 글을 읽으며 유족들의 온라인 이야기 공간인 얘기함이 있어 감사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유족들은 먼저 떠나보낸 가족의 이야기를 맘 놓고 이야기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별 이유에 대해 ‘왜?’, ‘어
    [전체 내용은 글쓴이에게만 보입니다.]
언젠가너를만나
사랑하는 동생 윤정이에게
사랑하는 동생 윤정아 하늘에서 잘 지내고 있니?
언니는 잘 지내고 있어. 하늘에서 잘 보고 있었지? 네가 벌써 죽은지도 17년의 세월이 흘렀구나.
아직도 얼마되지 않은 일인 것처럼 너를 떠나 보내던 날의 기억이 생생한데 시간은 벌써 이렇게 흘렀어. 그동안 언니는 두아이의 엄마가 되었어. 두 아이를 낳아 기르며 너의 생각이 더 사무치게 나는 것을 왜일까
언니가 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데 걸린 시간이 15년은 걸린 것 같아. 예전에 이렇게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는데, 만약에 그때도 있었다면 죽음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은 줄어들었을까?
자살의 ‘자‘도 이야기꺼내지 못했던 세월이 10년이고, 주변의 지인들에게 너의 죽음에 대해 말한지도 불과 2~3년 밖에 되지 않은 것 같아. 그만큼 나에게 너의 죽음은 너무나 큰 죄책감이고 미안함 이었어. 그리고 죽은 너를 추억할 수 없었던 것이 마음의 큰 병이 되어 잠시 우울증 약을 먹기도 했단다. 그런데 17년의 긴 세월과 함께 조금씩 너를 보내는 방법을 익히게 된 것 같아. 그 시간이 조금 짧았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이제라도 알게되어 너무 감사해.
17살 고1의 나이에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너의 우울증을 알아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고
언니로 살갑게 챙겨주기 보다 늘 질책과 충고가 앞선던 것 같아 너무 미안해. 너를 혼자 외롭게 했던 시간들이
너무 많았던거 같아 미안해.
사실 엄마와는 너가 죽고 너의 유품들을 정리한 후에 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어. 너가 소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너의 이야기를 꺼내면 우리 둘 중 누군가 무너져 내릴까봐 무서웠던 것 같아. 엄마도 엄마대로 가슴앓이를 했고, 나도 나대로 이렇게 긴 시간을 가슴앓이를 해 왔구나. 하지만 그래도 윤정아 우리는 널 사랑해.
많이 사랑했어.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아팠던 거야. 그 마음 꼭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하나님께 오랜시간 물었어. 자살로 죽은 것은 죄이긴 하지만 꼭 지옥에 가야하느냐고. 그렇다면 나는 주님을 믿을 수 없다고….. 그리고 오랜시간 기도하면 서서히 답들을 얻어가게 되었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도 몸이 암에 걸리듯 병에 걸린 죽음이었다는 것을. 자신의 의지로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예수님은 이미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에 자신의 몸을 버리사 십자가에 대한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그것은 현재와 과거 미래를 초월한 구원의 사건이었음을 말이야. 그래서 언니는 소망이 생겼어.
바로 내가 이 세상에서 허락된 모든 날을 살고 난 후, 저 천국에서 너를 만날 수 있다는 소망말이야.
내가 너의 몫까지 사랑하고 살며 이 땅을 다 살고 너와 다시 만나게 될 때에 난 늘 상상해
“윤정아 너를 많이 아껴주지 못해 미안했어. 하지만 평생 늘 너를 생각했고 많이 사랑해” 이렇게 만나서 말할 날을 늘 손꼽아 기다린다. 직접 가서 꼭 말해줄게. 엄한 언니는 이제 세월의 훈련을 받아 많이 착해 졌단다.
오늘도 어두운 밤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너를 생각해. 아니 생각이 나. 어떻게 17년이 흘러도 똑같은지.
그런데 이제는 고통스럽지만은 않아. 너가 있었기 때문에, 네가 내 동생으로 이 세상에 와 주었기 때문에
지금에 내가 있을 수 있었음을 알기 때문이야. 너가 있어서 엄마가 집에 돌아오는 늦은 밤까지 집에서 무섭지 않게
지낼 수 있었어. 너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조금은 더 어른스럽게 행동할 수 있었어. 너가 있었기 때문에 내 어린시절이
즐거웠어. 너가 내 동생으로 와줘서 정말 고마워.
17년의 짧은 이 세상의 삶이. 많이 고달팠지? 아빠는 4살떄 돌아가셔서 기억도 안났을 테고, 엄마는 늘 우리를 먹여살려야 해서 바빴고, 나는 나대로 공부한다 살아야 한다는 핑계로 너 혼자 두었던 시간이 많았어.
하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행복했고, 기뻤던 시간이 있었던 것도 기억하지? 그 시간을 함께해 줘서 정말 고마워.
이제는 한 걸을 더 슬픔을 깨고 나아갈게. 엄마와도 한번 이야기 할거야. 그래서 네 생일도 챙겨보고…. 너가 하늘에 간 날도 챙겨보려고 해…..그리고 네가 우리 가족으로 있었던 것을 감사하며 너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릴거야.
고맙고 사랑해. 어린 내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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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얘기함 동료지원 활동가 ‘푸리야’입니다.

    언젠가너를만나 님이 아닌 ‘윤정언니’로 불러도 될까요? 감히 제 스스로 그렇게 부르고 싶습니다. 제가 죽는 날까지 아들 ‘한빛엄마’로 불리고 싶은 것처럼요.
    아니 그래야 아들 한빛을 가슴에 묻지 않고 부활시켜 함께 살아갈 수 있어서 저는 이제 남은 생은 ‘한빛엄마’로 살려고 합니다.

    윤정언니의 글을 읽으면서 제가 위로를 받고 있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울컥하면서 윤정언니가 잘 살아주셔서 고맙고 지금 동생 윤정을 다시 추모하고 기억하며
    동생 윤정을 부활시켜 함께 있는 환한 상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17년의 긴 세월. 조금씩 동생을 보내는 방법을 익히게 된 것 같고 그 시간이 조금 짧았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이제라도 알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는 글에 한참 멈춰있었습니다.

    저는 아들을 보낸 지 7년이 지났습니다. 아들이 떠난 10월이 아니 가을이 오는 게 참 두렵고 슬픕니다. 평소에는 참 아름다운 계절이었지요. 10월의 하늘은 유난히 높고 청명한데, 붉고 노랗게 타고 있는 가로수의 나뭇잎들도 저렇게 아름다운데 아들은 왜 이런 것을 다 두고 떠났을까? 나는 이 작은 자연의 변화에도 설레고 희망을 갖게 되는데 아들은 왜 붙잡지 못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불쑥불쑥 찾아오는 질문으로 가슴은 온통 슬픔으로 출렁여 눈물이 쏟아집니다. 가슴이 막 헝클어져 어찌할 바를 모를 때도 있었습니다.

    아들 생일이 있는 1월도 그래서 힘듭니다. 생일날 미역국을 끓여 “한빛아. 너가 벌써 서른 다섯이네. 생일 축.하.해.” 하고는 엉엉 웁니다. 더 힘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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