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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잃은 자녀를 위한 공간
이쁜 딸
사랑하고 보고싶은 엄마에게
엄마 안녕? 오늘은 금요일이다
나는 조금씩 회복하고 있는 듯해
여전히 아침에 눈을 뜨면 그 순간부터 심장이 두근거리지만 이전만큼 죄책감에 매몰되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은 좀 줄었어
근데 조용한 건 좀 못참겠다
잠에 들 때도 일어나서도 무조건 삼탠바이미를 켜놓고 있어
전에는 비오는 소리, 눈보라치는 소리, 천둥소리 같은걸 되게 좋아했는데
이젠 비오는 소리가 그렇게 무섭더라
세차게 내리는 비를 실내에서 보면서, 들으면서…그거 되게 좋아했는데
이젠 그러 영상은 못봐…엄마 화장하던 날 비가 와서 그랬나
그래서 이젠 동물이 나오는 다큐를 틀어 넓은 자연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듣고 있으면
집중은 안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좀 마음이 편한 것 같아
엄마도 집에서 라디오를 틀어놨었는데…노래도 틀어놓고 법륜스님의 즉문즉설도 틀어놓고 잠오는 asmr 같은 것도 틀어놨는데…
불안해서 틀어놨었어…? 난 이명때문에 다른 소리에 집중하려 그런 줄 알았는데
‘넌 엄마가 듣지도 않으면서 이런거 틀어놓는게 이상하지도 않니?’
갑자기 그말이 떠오르네…내가 멍청해서 몰랐다 미안해
여전히 그날을 후회하긴 해
적어도 다시 생각해볼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먹기 싫은 약도 그냥 먹지말고 내가 옆에 있으면서 같이 밥먹고, 산책하고 하면서
컨디션을 조금씩 회복해나갔으면…엄마가
‘그때 안죽고 살길 잘했다 엄마가 너무 후회할 뻔 했어 고마워 딸 엄마가 미안해 힘낼게’
이렇게 얘기하지 않았을까 싶어
부담주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친척들이 엄마 옆에서 잘 케어하라구
딸래미 결혼식은 보고가야지, 애기 낳을때 미역국은 끓여줘야지
그렇게라도 얘기하면서 힘을 줘야한다 그랬는데
그 말 한마디라도 해볼 걸…버텨야할 이유를 좀..만들어줄걸
아닌가…안그래도 힘든 엄마한테 그건 좀 가혹한가 싶기도 하고
이젠 나는 시선을 좀 넓힐 수 있게 된 것 같아
자살유족은 고인의 죽음에 자신의 영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대
나는 그저 엄마가 살아온 삶의 한 일부분일 뿐이고 왜 그런선택을 했는지를 정확히 다 알 수는 없다고
그저 그 선택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그러더라
메달도 땄던 유명 장애인 운동선수가 스위스에서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는데
기사에 ‘그는 누구보다 살고싶었다. 다만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기위해 그런 선택을 한 것이다.’하고 적혀있었어
엄마도 건강했던 그 모습으로 다시 살고싶었던 거지?
자존심이 강했던 엄마가 그 성격에 침대에 누워
‘어 딸 왔니? 엄마 물 좀 갖다주라.. 밥 좀 먹여주라.. 엄마 힘들어..’
그러고 싶지 않았을거야…그치?
거기선 엄마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
건강하고 멋진 여성의 모습으로, 운동도 하고 살이 좀 찌면 다이어트도 하고,
주중엔 열심히 일하고, 주말 아침엔 느지막히 일어나 커피한잔도 하면서
엄마의 선택을 이해해볼게 존중할게
그래도….
그래도 미안해
아빠가 그러더라 엄마가 10월부터 사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고
기가막히게 나와 싸웠던 날이 들어있는 달이네
좀 가볼걸
겨우 차로 10분거리
좀…좀 가보지
상태가 괜찮을 때는 시선이 나에 대한 연민으로 바뀌어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뀐
어린나이에 엄마를 떠나보낸 내가
앞으로 힘든 날이 많을텐데
그걸 다 엄마품에 한번 안겨보지 못하고 견뎌내야 할 내가 좀 불쌍해서
나도 참 불쌍하다 생각하면 죄책감이 좀 사라지는 것 같아
이것조차 나의 합리화일까 끝까지 이기적인…? 모르겠다 좀 봐줘 미안
유퀴즈에 나온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님의 인터뷰를 봤어
알고보니 내가 좋아했던 책 [죽고싶은 사람은 없다]의 저자 고 임세원 교수님의 직장동료분이시더라
진정으로 환자를 아끼셨던 분이고 본인도 질병으로 인해 우울증을 앓아 환자들에게 진정으로 공감하고 도와주시려 했던 분인데
본인이 진료하던 조현병환자의 흉기에 찔려 돌아가셨거든
생각해보니 그 책 좀 엄마한테 읽어줄걸…이제와 생각해보니 그렇네
그 친구분을 그렇게 황망하게 보내고
몇 달을 힘들어하다 다시 일어설 때 이렇게 생각하셨대
이 모든 슬픔도, 아픔도, 다 내 삶의 일부분임을 기꺼이 수용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서 나의 길을 나아가겠다.
나도 엄마의 삶을, 결정을 수용하고
나의 고통을 내 삶의 일부로 수용하고
일어서서 나의 길을 걸어갈거야
엄마가 그토록 뒷바라지해서 만들어준 내 삶을 소중히 여기고
엄마의 뜻을 내 안에 담고 멋지게 살아갈게
엄마는 내 안에서 나의 삶을 같이 살아줘
힘든 날이 오면 나를 좀 안아주고
빛나는 날이 오면 나와 함께 즐거워해줘
거기서 큰이모랑 즐겁게 수다를 떨면서
나 좀 지켜주고, 지켜봐주라
엄마 내가 많이 사랑해
너무 미안해
미안하고 사랑하고
견디느라 너무 수고 많았어
꼭 다시 보자 사랑해
토닥토닥
공감해요
함계울어요
응원해요
추모해요
보고싶어요
사랑해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기억해요
함께해요
토닥토닥
x 0
공감해요
x 0
함계울어요
x 1
응원해요
x 0
추모해요
x 0
보고싶어요
x 0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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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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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x 0
기억해요
x 0
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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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 딸
사랑하고 보고싶은 우리 엄마에게
엄마 안녕? 나 또 왔어
편지 쓴지 몇시간이나 되었다고 또 하고싶은 말이 있네
요즘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예전에는 중간에 깨더라도 금방 다시 자서 열몇시간씩 자고 그랬잖아
나 학생때 엄마가 나 깨운다고 진짜 고생많았는데..그때 생각이 막 나네
지금은 한 6~7시간 자면 더이상 잠이 안와
사실 어제도 6시간 자고 일어나서 온종일 돌아다니느라 되게 피곤했는데
오늘 남자친구 출근시간에 맞춰 6시반에 잠깐 깼더니 다시 못자겠더라
그래서 여기와서 사람들이 쓴 글들 읽고.. 또 눈물을 흘리고.. 엄마한테 할 말도 생각해보고 그러고있어
여기 가족들을 떠나보낸 사람들이 정말 많아
다들 그들에게 미안해하고..보고싶어하고…자책하고 아파하고..그래..
부모를 잃은 자녀들의 글을 보고 공감하다가
자녀를 잃은 부모의 글을 보고 그 가슴아픈 사랑에 엄마도 날 이렇게 사랑했을까..그랬겠지…해
엄마
엄마가 집안이야기, 힘든 이야기 밖에서 하는거 아니랬잖아
그거 다 나중에 널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이 되니 힘든일 있으면 가족들이랑 하라그랬잖아
근데 엄마
나 그 약속 못지켰어
일주일도 안되어서 남자친구에게 말해버렸어
엄마가 어떻게 갔는지…내가 어떻게 놓쳤는지…얼마나 많은 기회가 있었는지..내가 얼마나 잘못했는지…
근데 그렇게 토해내듯이 털어놓고나니까
마음이 한결 가볍더라..진정으로 위로를 받으니까 너무 좋더라
엄마도 좀 털어놓고 살지 그랬어 나한테
힘든이야기는 가족들이랑 하는거라 그러더니 정작 엄마는 누구한테 얘기했는데…
부모, 형제들 이야기 들어주고 사느라 나는 내딸한테 힘든 이야기 안해야겠다 그런 생각한거 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속한 마음이 터져나오면 그렇게 화내고 그랬던 거지?
그렇게 참고참다 터뜨리지 말고
그냥 힘들다고 엄마 많이 힘드니 도와달라고 좀…일찍 말해주지그랬어….
화를 내는 엄마를 안아주기엔 내가 너무…그때의 내가 너무…철이 없었다
내가 너무 철이 없고 어리석었어
내가 너무 멍청했어 나같은게 무슨 의사라고…
자기엄마 놓친 내가 무슨 남을 돕겠다고
가족도 돌보지 못하는데 남들 도와 내가 무엇한다고…
그 사람들 신경쓰기전에 엄마좀 먼저…좀.. 먼저..
그게 다…신호였는데
좀 따뜻하게 안아줄걸
힘을 줘서 꽉 끌어안아 매달려 울게해줄걸
나 일도 그만뒀어
이렇게 쉬운거였는데 그때 엄마옆에 좀 붙어있을걸…왜 진작 이렇게 하지 못했나 싶어
요즘엔 남자친구가 같이 있어주고 있어
퇴근하고 오면 저녁을 같이 먹고 얘기하다가 같이 자
지금까지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카톡답장이 늦으면 자꾸 확인하게 된다?
전에는 내가 카톡을 몇시간 뒤에 하고, 남자친구 답장이 없어도 카톡창도 확인 안했거든? 이따 연락 오겠지..하면서
근데 요즘엔 자고 일어나면 아빠한테 제일 먼저 카톡하고
답장이 바로 오면, 안심하고… 좀 걸리면 그 시간 동안 불안해하고
그 다음 남자친구한테 출근은 잘했는지 묻는 카톡을 보내
혼자 있으니 좀 불안하다 어제부턴 가슴이 두근거리네
엄마도 혼자 있을 때 이렇게 불안했을까
연락 좀 해주지
혹시 그 뜬금없이 뭐 물어보는 카톡도 참다참다 보낸 것들이었어?
그것들은 핑계고 괜찮냐고 묻는 말 좀 듣고 싶어 보낸 것들이었어?
내가 거기에 답장만 하고…요즘 괜찮냐고, 잠은 잘 자냐고, 몸은 좀 어떠냐고, 밥은 먹냐고 묻지않아서
허망했어…?
더 안물어보나..하고 기다렸어 혹시…?
아…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생각하니까 또 미안해 미치겠다 좀 물어볼걸
따뜻하게 좀 물어볼걸
아빠한테 한 것처럼 나한테도 힘들다고 전화해주지
내가 더 빨리 갈 수 있는데
아빤 제주에 있잖아 난 엄마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살고있잖아
나한테좀…. 좀 말해주지……왜 이렇게 알게 해…..
어떻게 이렇게 사무치게 해
사랑한다는 말 말고
날이 추우니 따뜻하게 입고다니라는 말 말고
‘엄마 힘들어’ 그렇게 좀 말해주지
엄마 나 이제 스물일곱이야… 나 앞으로 힘든 일 많을텐데
부르짖을 엄마가 없어
엄마 카톡창도 이제 못열어보겠어
문자도 못보내겠어
11월 2일 민생지원금 빨리 써야한다는 말, 11월 5일 친척에게 김치보내지 말라고 했냐는 말
거기에 내가 쓴 짧은 답장
그리고 마지막 11월 21일
‘엄마가 많이 사랑하는거 알지?’
카톡대화를 볼 때마다 가슴이 무너져내려
그 사이에 한번도 연락을 안한 내가
내가 너무 끔찍해
끔찍해서 견딜 수가 없어
좀 물어볼 걸
엄마…엄마 버림받았다 생각한거 아니지….?
엄마 내가 엄마 많이 사랑하는거 알지…? 그건 알고 간거지?
엄마 내가 미안해
어제는 상담도 받고 왔어
엄마가 갑자기 사랑한다는 카톡을 보냈는데
마지막으로 온 ‘수고해’라는 카톡이 너무 일상적이라
그리고 그 카톡을 곱씹을 시간도 없이 일하느라 엄마를 놓쳤다 그런 얘기를 선생님께 했는데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내가 이상한 생각 안들게 일부러 평소처럼 보내셨다고
엄마…그런거야…?
일부러 나 속이려고 그런거야?
나 좀 잡아달라는 구조신호를 내가 너무 무심해서 못 알아챈게 아니라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해서 내가 속은거야…?
그런거였으면 좋겠어
내가 놓친게 아닌거면 좋겠어
…그냥 내가 그렇게 합리화를 하고 싶은가봐 끝까지 이기적이게..그치
나는 모르게 해달라는 유언은 못지켰어 미안
아빠가 무슨 정신이 있어서 그 상황에 혼자 수습까지 다 마무리하고 날 부르겠어
엄마 발견하자마자 바로 전화하셨지
근데 만약 아빠가 그렇게 날 속이고 내가 나중에 알게되었으면 더 싫었을 것 같아
어떻게 그걸 혼자 겪게 하겠어 책임은 두사람의 몫인데…
엄마 걱정마
나 잘 부탁한다는 엄마 말처럼
아빠가 엄마 몫까지 나 두배로 더 사랑해준대
아빠는 나 때문에 살고, 난 아빠 때문에 살고…
난 남자친구가 옆에서 잘 붙들어주는데
혼자 있는 아빠가 걱정이다…매일 물어보면 괜찮다고는 하시는데
우리 가족은 왜 힘든얘기를 서로한테 안했을까
아빠도 그렇고…엄마도 그렇고…나도 그렇고…
저번에 부의금 명단 작성하면서 난 몰랐던 엄마랑 아빠랑 했던 시댁이야기, 엄마가 손절한 친구이야기 이런거 저런거 얘기했는데
좋더라
정말?하고 되묻고 어떻게 그걸수있지?하면서 같이 화내주고, 어이없어하고, 공감하고..
엄마도 좀 말해보지
속으로 쌓아두지 말고
쌓아둔거 어떻게든 흘려보내려고 즉문즉설 이런거 듣고 반야심경 외우고 그러지말고
딸한테 좀 털어놓지 그랬어 같이 욕 좀 해달라고
아니다…그렇게 무심했던 내가 뭐 어떻게 행동했겠어…
별거아닌걸로 그래?하며 또 엄마 상처나 줬겠지
이미 털어놨는데 내가 기억이 안나는건가…그정도로 대충 들었었나…
혼자 외로웠겠네
너무 외로웠겠어…
말해도 소용없으니 입을 닫았던 걸 수도 있겠네
요즘 집이 조용하면 불안해
불안해서 뭐라도 틀어놓게 되더라
클래식도 틀었다가..즐겨보던 연애상담채널도 틀었다가…ebs다큐도 틀었다가…
엄마도 집에 라디오를 항상 틀어놨었는데…
난 엄마가 이명때문에 틀어놓은거라한 걸 그냥 그렇구나 하고 믿었는데
혹시 불안해서 틀어놓은 거였어…?
불안해서 참을 수 없을 때쯤 그런거였나
못해준게 너무 많다
이렇게 고생만 하다 갈 사람은 아니었는데
나 개원할때 투자금 보태주고 용돈처럼 다달이 돈받아 살거라 그랬다며
친척언니한테 들었어 엄마가 처녀시절에 잘 놀아주고 챙겨줬던
유난히 엄마를 많이 닮아 잘 참는 언니
엄마가 언니한테 참고 살지 말라고 했다며
나도 저번에 그말 똑같이 해줬어
그래서 언니 안참고 산대 다행이지? 조카는 나도 옆에서 잘 챙기려구
언니한테 했던 말 좀 지키고 가지 그랬어
딸래미 잘키워서 노년은 걱정없겠다~하며 용돈받아 생활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꽃도 많이 키우고
커피도 마시고 맥주도 마시고
나 애기 낳으면 손주도 좀 안아주고 그러지…
나 결혼식은 좀 와주지그랬어
아픈 엄마한테 거기까지 와달라 하는건 좀 가혹한가..ㅎㅎ
아빠가, 원래 사랑은 내리사랑이래
부모가 자식한테 준 사랑만큼 자식이 부모에게 돌려주는건, 원래가 그게 안된대
그래서 나중에 내가 자식을 낳아서
엄마가 나한테 했던 것처럼 그렇게 크게 사랑해주면
그게 엄마한테 보답하는 길이래
엄마, 맞아?
그거면 되겠어…?
만약 그런거면 엄마가 나한테 와주라
엄마가 내 딸로 다시 태어나서 나한테 사랑 좀 많이 받아라
넘치게 사랑받아서 어른이 되는 그 순간까지 한번도 외로울 틈이 없어라
우연찮게 지금 남자친구가 엄마랑 성이 똑같네? 같은 최씨야 뭐 본가는 다르겠지만.. 뭐어때ㅎㅎ
나는 딸을 낳을래
그리고 2명은 낳아야겠어 외동딸은 좀 외로운 것 같애
엄마 이름을 가진 딸을 낳을래
우리 선영이
사랑하는 우리 선영아
사랑한다
엄마가 많이 사랑해
많이 많이 사랑해
최선영
엄마 내가 사랑해 아주많이 하늘만큼 땅만큼 우주만큼
잡아주지 못해 미안해
토닥토닥
공감해요
함계울어요
응원해요
추모해요
보고싶어요
사랑해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기억해요
함께해요
토닥토닥
x 0
공감해요
x 0
함계울어요
x 0
응원해요
x 1
추모해요
x 0
보고싶어요
x 0
사랑해요
x 0
미안해요
x 0
고마워요
x 0
기억해요
x 0
함께해요
x 0
이쁜 딸
사랑하는 엄마에게
엄마 안녕?
엄마가 항상 불러주던 이쁜 딸이야
벌써 엄마가 간지 열흘이나 지났어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데…사실 잘 못지내
나는 아직도 그날에 머물러있어 2025년 11월 22일 토요일
금요일, 토요일..그 이틀동안 나는 시간대별로 옮겨다니며 엄마를 붙잡는 상상을 해
금요일 오후 4시40분, 갑자기 엄마가 카톡을 보냈던 시간
‘이쁜 딸
날이 춥다
따뜻하게 입고다녀
엄마가 많이 사랑하는거 알지?’
순간 문자를 보고 느낌이 이상했는데, 이어서 내가 보낸 사랑한다는 답장에
‘수고해’라고 온 한마디가 너무 일상적이라서,
마침 카톡을 마치니 급하게 일이 물밀듯이 밀려와서
그 내용을 곱씹을 시간이 없었어
그 이상한 기분이 채 30분을 가지않고
9시에 퇴근하고 나왔을때는 엄마한테 그런 카톡이 왔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다?
보자마자 전화라도 해볼걸 그랬나봐
이명때문에 전화를 피하는 엄마를 생각해서 이따 연락해야겠다 하고 한 발 물러섰는데
그게 이렇게까지 후회로 남네
나는 엄마가 아빠에게 남긴 유서의 날짜가 11월21일이라 금요일 밤에 간 줄 알았다?
근데 엄마의 장례식이 끝나고 핸드폰을 찾아 마지막 흔적을 막 찾는데
토요일 점심까지 남아있는 유튜브 시청기록을 보고
나는 무너질 수 밖에 없었어
엄마, 나는… 내가 끔찍해서 견딜 수가 없어
살릴 수 있었어
유난히 주말치고 일찍 눈이 떠졌는데..
일하느라 바쁜 것도 아니었고
어디 외출해서 정신없이 노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내 자취방에서…침대에 누워…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는데
같이 바람쐬러 나가자는 남자친구의 말에도 불구하고 나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며 시시덕 거리고 있었어
내가 그러는 사이 엄마는….
금요일에 그런 문자를 받았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금요일에 카톡을 받지마자 전화를 했다면
직장에 양해를 구하고 엄마집으로 달려갔다면
퇴근하고 이미 엄마가 잠들어있을 시간이지만 굳이 깨워서 얼굴이라도 확인을 했다면
토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집에 갔다면
하다못해 남자친구가 나가자고 할때 나와 잠시 본가에 데려다 달라했다면
그렇게 극적으로라도 구할 수 있었다면..
새벽5시에 일어나 약을 먹기 위해 먹히지도 않는 밥을 억지로 먹고
12시까지 장장 7시간을 넘게..혹은 그보다 더…
엄마…나 기다렸어…?
그런 문자를 보냈는데 혹시나하며 오겠지
그나마 가까이 사는 내가 오겠지
와서 나를 잡아주겠지 끌어안고 죽지말고 살아달라 사랑한다 말해주겠지
그렇게 기다렸어…?
엄마 미안해
혼자 아프게 둬서 미안해
엄마를 괴롭힌 그 증상들을 어떻게든 치료해보려고 카페, 블로그, 유튜브 등을 탐독하며 캡쳐해둔 사진들을 보고
그 치열한 흔적을 보고 난 너무…
그걸 다 혼자 알아서 했다는게 가슴이 너무 아파
왜 그때는 옆에서 같이 해주지 않았을까
너무 기가막히게 맞아떨어지는 타이밍이었어
나는 갑자기 너무 바빠져서 주변에 신경조차 쓰지못했고
엄마는 하필 그때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고
하루하루 출근만 해도 벅차서.. 괜히 엄마를 외면했어
외면하니까 좀 숨이 트였어
근데 그럴 수 있잖아 좀 소홀할 수 있잖아 아주 잠깐 내려놓을 수 있잖아
실수를 만회할 기회는 줘야지 어떻게 그렇게 가버릴 수가 있어
엄마를 안아주고 싶었어
그나마 잘먹는 된장국을 끓여서 같이 밥을 먹고싶었어
아침에 일어나면 ‘잠은 좀 잤어? 오늘 기분이 어때?’ 물으며 이마에 뽀뽀를 해주고 싶었어
먹기 싫은 호르몬제는 먹지말라며 약을 다 버려버리고 ‘이제 먹지마!’하며 엄마편을 들고싶었어
순간 불안해지고 이명이 심해질때는 가만히 옆에 누워 토닥토닥 안아주고 싶었어
자기 전에 자장가를 불러주며 편히 잠들 수 있게 재워주고 싶었어
울분을 토하며 힘들다 외칠땐 힘줘서 꽉 안아 그 한을 다 받아주고 싶었어
하고싶은게 너무 많아…
못해준게 너무 많아…
내가 미안해
잡아주지 못해 미안해
그렇게 지칠 때까지 혼자 둬서 미안해
엄마 내가 많이 사랑해
내가 많이많이 사랑해
거기서는 아프지말고, 하고싶은거 다하고 살아
투병후에 그 좋아하는 커피도 못마셨으니 하루에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 마시고
자기전에 맥주한잔 하는 것도 좋아했으니 맥주도 마시고
엄마가 마시려고 담궜던 매실주도 마시고..그거 탄산수에 타먹으면 진짜 맛있다?
남편, 자식한테 희생하지 말고
엄마 아빠한테 소중한 딸로 오래도록 사랑받고
읽고싶은 책 다 읽고 하고싶었던 공부도 다 하고, 그렇게 꿈을 펼치며 살아
남들 보살피지 말고, 보살핌을 받고 살아
거기선 평온하고 행복해야해
사랑한다는 엄마의 말, 나의 정신적 충격을 최소한으로 해달라는 아빠에게 남기는 편지
그거 그대로
나 잘 살게
엄마의 사랑을 믿으며 살게
엄마의 행복을 믿으며 살게
엄마, 내가….
내가 진짜 정말 많이 사랑해
미안하고 사랑하고 또 미안해
너무 사랑해
토닥토닥
공감해요
함계울어요
응원해요
추모해요
보고싶어요
사랑해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기억해요
함께해요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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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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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계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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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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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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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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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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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푸리야)
20251204074222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 활동가 푸리야입니다
이쁜 딸님이 지금 얼마나 엄마가 그립고 이 모든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아니 지금이라도 시간을 엄마가 떠나신 토요일 1초 전으로 돌리고 싶어할지 알기에 이쁜 딸님의 긴 글을 읽고 또 읽으며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이쁜 딸님이 시간대별로 옮겨다니며 엄마를 붙잡는 상상을 하는 것 역시 공감하기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조심스레 이쁜 딸님 곁에 서 봅니다.
저도 9년 전. 아들이 떠나고 그랬습니다. 스물일곱살의 아들을 보내고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고 이쁜 딸님이 아직도 그날에 머물러 있듯이 그 시간을 내 일상에서 지울 수 있다면, 아들이 떠나기 1초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하면서요. 아까도 벌써 12월이네 하며 달력을 바라보는데 불쑥 ‘많이 춥네. 따뜻하게 입고 다니니?’하며 아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정신을 차려 현실을 인식하니 온몸과 마음이 눈물로 가득차왔습니다. 아들이 너무 그립고 보고 싶었습니다.
아들이 떠난 그 시간 이후로는 저에게도 시간이 멈췄습니다. 세상의 시간은 이렇게 흘러갔고 어느새 9년이 지났고 2025년도 어느새 12월이 되었음에도 저의 시간은 여전히 그날에 머물러 있고 정지되어 있습니다. 이쁜 딸님의 시간 역시 지금 그날에 머물러 있듯이요.
그런 속에서 엄마께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고 못해준 게 너무 많아 엄마께 미안해하는 이쁜 딸님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유가족들의 마음은 다 같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렇고 사
[전체 내용은 글쓴이에게만 보입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 활동가 푸리야입니다
이쁜 딸님이 지금 얼마나 엄마가 그립고 이 모든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아니 지금이라도 시간을 엄마가 떠나신 토요일 1초 전으로 돌리고 싶어할지 알기에 이쁜 딸님의 긴 글을 읽고 또 읽으며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이쁜 딸님이 시간대별로 옮겨다니며 엄마를 붙잡는 상상을 하는 것 역시 공감하기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조심스레 이쁜 딸님 곁에 서 봅니다.
저도 9년 전. 아들이 떠나고 그랬습니다. 스물일곱살의 아들을 보내고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고 이쁜 딸님이 아직도 그날에 머물러 있듯이 그 시간을 내 일상에서 지울 수 있다면, 아들이 떠나기 1초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하면서요. 아까도 벌써 12월이네 하며 달력을 바라보는데 불쑥 ‘많이 춥네. 따뜻하게 입고 다니니?’하며 아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정신을 차려 현실을 인식하니 온몸과 마음이 눈물로 가득차왔습니다. 아들이 너무 그립고 보고 싶었습니다.
아들이 떠난 그 시간 이후로는 저에게도 시간이 멈췄습니다. 세상의 시간은 이렇게 흘러갔고 어느새 9년이 지났고 2025년도 어느새 12월이 되었음에도 저의 시간은 여전히 그날에 머물러 있고 정지되어 있습니다. 이쁜 딸님의 시간 역시 지금 그날에 머물러 있듯이요.
그런 속에서 엄마께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고 못해준 게 너무 많아 엄마께 미안해하는 이쁜 딸님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유가족들의 마음은 다 같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렇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모두들 자책하면서 다 괴로워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마음은 당연한 것이고 정상이기에 이쁜 딸님은 힘들어하지 말고 자책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쁜 딸님의 마음은 옳습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고름을 빼내는 과정이 있어야 그 위에서 새살이 꾸둑꾸둑 올라오기 시작하듯이 우리도 마음껏 울고 마음껏 미안해하고 마음껏 그리워하고 마음껏 연민해야 그다음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엄마없는 세상에, 아들없는 세상에 무슨 의욕이 있다고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새 삶을 살고 싶냐고 우리 스스로에게 항변할지 모릅니다. 저도 수없이 그러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쁜 딸님은 저보다는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고 덜 힘들게 이 시간들을 통과하기를 바랍니다. 애도에 정답은 없지만요.
그렇기에 ‘엄마의 사랑과 행복을 믿으며 잘 살게’ ‘진짜 정말 많이 사랑해’하는 이쁜 딸님의 엄마에 대한 고백을 들으며 다행이다, 고맙다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저처럼 혼자 괴로워하지 않고 자신을 따듯하게 안아줄 것 같아서입니다. 엄마도 평화롭게 이쁜 딸님을 바라보고 계실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얘기함에 들러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보고픈 마음을 표현한 용기에도 감사드립니다. 글을 쓰면서 그 시간이 이쁜 딸님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겠지만 글을 읽은 저에게도 다른 유가족에게도 위로가 되고 치유를 가져왔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에는 정혜윤님의 <삶의 발명>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2년 전 후배가 선물한 책이었는데 그때는 글자로만 읽었던 것 같습니다. 후배는 제가 이 책을 읽고 ‘새로운 길’을 찾아가길 간절히 바랐겠지만 저는 별 느낌도 없었고 그냥 꾸역꾸역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게 다가와서 저도 놀랐습니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의 일부가 되겠습니까’ 라는 질문에 답을 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저에게는 큰 변화였지요. 물론 그러고도 어제도 오늘도 무너지고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슬픈 감정에 빠져 살아갑니다. 그러나 내 삶의 발명이 만들어가고 지향할 이야기는 무엇일까 고민하며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순간순간 하는 자자신을 보기도 합니다. 기특하다고 잘 살아가고 있다고 토닥거려도 될까요?
어느 새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엄마 없는 세상은 모든 것이 다 의미가 없고 무기력해지기까지 하지만 이쁜 딸님도 저도 덜 추운 겨울을 보내기를 바라며 우리 함께 잘 살아가도록 노력해 봐요.
살고있는 거주지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정신건강전문가와 1:1 상담 가능합니다. 위치와 정보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홈페이지 자살예방 기관검색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kfs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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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라
이쁜 우리 딸 이라고 부르던 나의 아빠
아빠
오늘 오빠까지 얼굴봐서 좋았지?
20년 넘게 못 본 오빠가, 아빠를 미워해서 언급하는 것도 싫어하던 오빠가
아빠 마지말 가는 길은 장남으로서 그 역할을 다 했어. 오늘 아빠를 봉안당에 잘 안치했어.
오빠 많이 보고싶었지.. 드디어 만났네.
오빠도 아빠가 너무 불쌍하고 많이 고독했을 거 같대
아빠의 마지막 흔적들이 너무 가슴이 아파서 미치겠어..
유일하게 보는 딸인데 나 살기 바빠서 작년 구정 이후로 얼굴 비추지 못 해서 미안해
왜 아무런 말없이 가버린거야 그렇게 무기력 해질 때까지 얼마나 고독하고 힘들었을까..
갈 때 괴롭진 않았어? 그게 젤 걸려
이번 일을 계기로 소원했던 오빠와 마지막엔 서로 꽉 끌어 안아줬어
남은 우리가족 똘똘 뭉치자고도 약속했어
아마 아빠가 마지막으로 준 선물인가봐
혼자 너무 외로웠을 삶을 위로해
평생 사랑할게 기억할게
아빠 그 곳에선 편안하게 지내고 우리 따뜻하게 바라봐줘 또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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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
계속 더 힘들어져
아빠 잘 지내고 있어?
아빠 가고 나서 일부러 밖에 나가고 사람들 만나면서 정신없이 지내려고 했어.
마치 없었던 일처럼 그냥 내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
그냥.. 아빠의 모든 괴로움과 외로움을 내가 외면한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해.
나는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빠의 딸인데
왜 나는 아빠의 마음을 외면하려고 했을까..
나를 원망해도 좋고 그냥 바라만 봐도 좋으니 꿈에라도 한번만 나와주라
아빠.. 요즘 나는 너무 방황하고 있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도 아빠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마음 아프고
결혼식에 아빠가 없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 슬프게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감정인지 아빠한테 미주알 고주알 얘기하고 알려주고 싶은데
아빠한테 닿을 길이 없으니까 괴로워 미치겠어
아빠라면 답을 알고 있을텐데..
아빠 바램대로 평범하게 아기 낳고 사는 모습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아서 미안해
아빠한테 늘 자랑스러운 딸이고 싶었는데 점점 자신이 없네..
오늘은 꼭 한번만이라도 내 꿈에 나와줘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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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푸리야)
20251124054556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 활동가 푸리야입니다
니나 님이 얼마나 아빠를 그리워하고 아빠가 떠나신 후 너무나 외로워 일부러 밖에 나가고 사람들 만나면서 정신없이 지내려고 하는 모습에 공감이 가기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마치 없었던 일처럼 그냥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어하는 니나 님의 마음이 지금 얼마나 추울까 곁에 있다면 따뜻한 담요라도 건네주고 싶었습니다.
저도 9년 전. 스물일곱살의 아들을 보내고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 시간을 내 일상에서 지울 수 있다면, 아들이 떠나기 1초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하면서요.
저는 니나 님과는 반대로 고립을 택했습니다. 혼자 방에 갇혀 나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먼저 모든 관계를 끊었습니다. 직장에서도 철저히 이중적인 생활을 했는데 니나 님처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내 기억 속에서 지우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나니 다른 유가족들은 저처럼 이렇게 힘든 시간을 살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되고 그들은 저보다는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살아가기를 바라기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니나 님이 이렇게 얘기함에 들러 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보고픈 마음을 표현한 게 너무 다행이고 고마웠습니다. 니나 님이 저보다는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고 덜 힘들게 이 시간들을 통과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작년 이맘 때 작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탔던 기억이 납니다. 한강의 작품을 많이 읽지도 않았고 한강의 작품이 모두 처절한 내용이라 저는 가까이하기도 두려웠습니다. 아들이 떠난 후 ‘죽음’이란 단어를 스
[전체 내용은 글쓴이에게만 보입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 활동가 푸리야입니다
니나 님이 얼마나 아빠를 그리워하고 아빠가 떠나신 후 너무나 외로워 일부러 밖에 나가고 사람들 만나면서 정신없이 지내려고 하는 모습에 공감이 가기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마치 없었던 일처럼 그냥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어하는 니나 님의 마음이 지금 얼마나 추울까 곁에 있다면 따뜻한 담요라도 건네주고 싶었습니다.
저도 9년 전. 스물일곱살의 아들을 보내고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 시간을 내 일상에서 지울 수 있다면, 아들이 떠나기 1초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하면서요.
저는 니나 님과는 반대로 고립을 택했습니다. 혼자 방에 갇혀 나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먼저 모든 관계를 끊었습니다. 직장에서도 철저히 이중적인 생활을 했는데 니나 님처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내 기억 속에서 지우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나니 다른 유가족들은 저처럼 이렇게 힘든 시간을 살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되고 그들은 저보다는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살아가기를 바라기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니나 님이 이렇게 얘기함에 들러 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보고픈 마음을 표현한 게 너무 다행이고 고마웠습니다. 니나 님이 저보다는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고 덜 힘들게 이 시간들을 통과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작년 이맘 때 작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탔던 기억이 납니다. 한강의 작품을 많이 읽지도 않았고 한강의 작품이 모두 처절한 내용이라 저는 가까이하기도 두려웠습니다. 아들이 떠난 후 ‘죽음’이란 단어를 스스로 피하기도 했지만 솔직히는 아들이 떠난 후에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고 가치가 없어 무심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우연히 한강이 시상식 자리였나 어떤 공식적인 자리에서 수상소감을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제가 한강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듣는데 저도 모르게 울음이 터졌습니다. 유투브로 다시 보면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다’ 이 말은 역사적인 사안에만 붙이는 수식어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니나 님처럼 아빠가 그리워 괴롭고 미칠 것 같은 것,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감정인지 아빠한테 미주알 고주알 얘기하고 알려주고 싶은 그 간절한 마음은 제가 먼저 떠난 아들을 가슴에 묻지 않고 곁에 두고 싶어하는 마음과 같았습니다. 그 그리움이 힘이 되어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지 않나 합니다. 결국 먼저 떠난 사랑하는 아들이 저를 구하고 있고 덕분에 나는 오늘도 떠난 아들과 함께 현재진행형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퍼뜩 깨달았습니다.
니나 님. 방황은 당연한 것입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아들이 떠났는데 행복할 수는 없잖아. 내가 이러고 있는 것은 당연한 거야. 이런 내 마음은, 내 일상은 옳은 거야’ 하며 매일 제 마음을 토닥이듯이 니나 님도 자신을 따듯하게 안아주길 바랍니다.
아빠의 모든 괴로움과 외로움을 외면한 것 같아서 미안하다는 니나 님의 자책감 역시 당연한 것입니다. 저도 그렇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니나 님. 혼자 괴로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마음이 오히려 살아있는 우리를, 현재를 살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살기 위해서 죽음을 선택했던 아빠와 나의 아들같은 사람들이 죽음의 흔적보다는 희망의 언어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죽음의 흔적보다는 희망의 언어’. 저는 이 말을 많이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의 흔적에 매달리면 끝을 바라보는 것이지만 아들을 희망의 언어로 기억하면 이어져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떻게 바라보는가는 우리의 마음에 달려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니나 님. 아빠와 너무 많은 일상을 같이하고 싶었었기에 그렇지 못하는 하루하루가 고통스럽고 힘이 들겠지만 아빠한테 늘 자랑스러운 딸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아빠를 사랑하는 길인지 아니까요.
어떤 말도 니나 님에게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저도 아들이 떠난 후 행복이나 희망이란 말을 써 본 기억이 없지만 니나 님은 저처럼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새롭게’ 하루를 열고 ‘새로운’ 길을 찾아가기를 바랍니다. 그 길을 아빠와 함께 간다고 생각하면서요.
어느 새 12월입니다. 저에게는 멈춰있는 시간을 비웃듯 세상의 시간은 이렇게 어김없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니나 님도 저도 덜 추운 겨울을 보내기를 바라며 우리 함께 잘 살아갑시다.
사랑합니다.
살고있는 거주지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정신건강전문가와 1:1 상담 가능합니다. 위치와 정보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홈페이지 자살예방 기관검색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kfsp.or.kr)
p.s. 아래의 정보는 즉각적인 전화 상담이 필요할 때, 도움 받으실 수 있어 안내드립니다. -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박나리
사랑하는 내 엄마에게
엄마 엄마가 떠난지 벌써 일년이 다 되어 간다. 나는 그동안 생각보다 잘 지냈어.
우는 날도 있었고 마음아프고 힘든 날도 있었지만 지금도 보고싶고 그리워 울지만 그래도 나 꿋꿋하게 잘 지내.
어젯밤에도 꿈에 나와 엄마가 죽지 않고 살아왔다고 그래서 내가 그동안 미안했다고 이제 정말 잘 하겠다고 얘기했어.
엄마는 왜 자꾸 내 꿈에 나와서 살아있다고 그러는거야 나 꿈깨고 나면 너무 허망해...
꿈에서만 엄마를 봐야하고 그때만 따뜻하고 그 느낌이 너무 좋아 자꾸 꿈만 꾸고 싶어.
엄마. 너무너무 보고싶어.
내가 그동안 더 살갑게 못 하고 자주 안아주지 못한거 너무 미안해
엄마가 정말 다시 살아온다면 내가 진짜 잘 할게
어짜피 못 살아 온다는거 아는데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엄마 거기선 안아프지? 아프지마... 공부 못 했던것도 다 공부하고 학교도 다니고 좋은데도 많이가면서 잘 지내고 있어
우리애기 잘 보고있지? 애기한텐 엄마가 수호천사가 됐다고 했어.
엄마 진짜 너무 보고싶다 안녕
토닥토닥
공감해요
함계울어요
응원해요
추모해요
보고싶어요
사랑해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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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행복소울지기)
20251122171208
안녕하십니까?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활동가 행복소울지기입니다. 엄마가 그립고, 보고싶고, 항상 슬퍼도 본인의 생활에 진심인 것이 느껴져 가슴이 먹먹해 옴은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박나리님은 대단하신 분 같습니다. 감정에 충실하면서도 본인의 생활에도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느껴져 세상 어떤 말로도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크고 힘든 시간을 살아온 힘이 느껴집니다.
어머님을 잃은 자녀의 심정은 어떠한 아픔과도 비교가 될 수 없지만, 항상 곁에서 박나리님을 지켜주고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엄마와 함께 했던 추억들은 그 어떠한 것도 바꿀 수 없는 보물함인 것은 확실합니다.
어머니의 따듯한 손길이 꿈에서 까지 느껴졌다면 생전에 박나리님에게 항상 힘을 줬던 분이었다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저 또한 엄마의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자녀로서 지금은 엄마를 전혀 볼 수 없는 현실에서 한 번씩 사무치게 보고 싶을 때 안치되어 있는 공원을 찾곤 합니다.
생존시에는 엄마의 말 한마디에 신경질을 극도로 내거나, 영원히 이별하고 싶었던 날이 많았는데, 지금은 떠나고 없는 엄마가 보고 싶은 날이 더 많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있을 때는 당연한 존재로 생각했던 존재가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을 때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 것 같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는 영원히 살아있다는 사실도 잃어버린 채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마음 속에 자리를 차지한 어머니를 그대로 간직한 채로 우리의 몫을 다하기 위해 하루생활에 최선을 다했으면 합니다.
[전체 내용은 글쓴이에게만 보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활동가 행복소울지기입니다. 엄마가 그립고, 보고싶고, 항상 슬퍼도 본인의 생활에 진심인 것이 느껴져 가슴이 먹먹해 옴은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박나리님은 대단하신 분 같습니다. 감정에 충실하면서도 본인의 생활에도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느껴져 세상 어떤 말로도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크고 힘든 시간을 살아온 힘이 느껴집니다.
어머님을 잃은 자녀의 심정은 어떠한 아픔과도 비교가 될 수 없지만, 항상 곁에서 박나리님을 지켜주고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엄마와 함께 했던 추억들은 그 어떠한 것도 바꿀 수 없는 보물함인 것은 확실합니다.
어머니의 따듯한 손길이 꿈에서 까지 느껴졌다면 생전에 박나리님에게 항상 힘을 줬던 분이었다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저 또한 엄마의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자녀로서 지금은 엄마를 전혀 볼 수 없는 현실에서 한 번씩 사무치게 보고 싶을 때 안치되어 있는 공원을 찾곤 합니다.
생존시에는 엄마의 말 한마디에 신경질을 극도로 내거나, 영원히 이별하고 싶었던 날이 많았는데, 지금은 떠나고 없는 엄마가 보고 싶은 날이 더 많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있을 때는 당연한 존재로 생각했던 존재가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을 때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 것 같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는 영원히 살아있다는 사실도 잃어버린 채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마음 속에 자리를 차지한 어머니를 그대로 간직한 채로 우리의 몫을 다하기 위해 하루생활에 최선을 다했으면 합니다.
그러다가 보고싶음이 절정에 달하면 한번 씩 추억의 책장을 넘겨, 즐거웠던 추억을 소환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지금까지도 잘 해 왔는 박나리님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하실 것 같은 박나리님을 응원하겠습니다. 그러니 박나리님의 목표에 최선을 다하는 하루의 삶을 채워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하루로 도전의 시작하셨으면 합니다. 언제나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감당이 되시지 않을 정도로 힘드시면
살고 있는 거주지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정신건강전문가와 1:1 상담 가능합니다.
위치와 정보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홈페이지(https://www.kfsp.or.kr) 자살예방 기관검색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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껑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예쁜 우리 엄마에게
안녕 엄마♥
하늘에서는 잘 지내고 있어? 날이 갑자기 추워지고 있는데 거기에서는 춥지 않을까 많이 걱정이 되네. 그렇지만 엄마라면 또 빨간 등산화에 녹색 점퍼에 파란색 백팩을 매고 귀여운 빨강 비니모자까지 쓰고 또 하이킹할 생각에 기대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엄마가 잘 지내고 있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
엄마가 세상을 떠난지 벌써 15일이나 지났어. 엄마랑 이야기 못해본 기간이 내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길게 오고 있어. 앞으로 더 길어지겠지? 일방적으로 엄마에게 글을 쓸 때마다 언젠가 답장이 오지 않을까 하고 막연하게 생각이 들고 있어. 웃기지? 엄마 휴대폰은 계속 살려둘 거라 다른 사람한테 답장이 올 일도 없는데 그냥 계속 마음 속으로는 엄마가 아직 죽었다는 게 실감이 안 나.
엄마 있지 사실 나는 엄마가 외로워할 때마다 내가 곁에 있어줘도... 엄마의 그 외로움을 채워주기엔 나 하나만 잘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내가 아무리 100을 해도 엄마 안에선 30밖에 채워지지 않는 것 같다고 계속 생각했어. 그래서 아빠나 언니나 주변 사람들이 좀 잘 해서 엄마의 70을 채워주길 바랐는데, 각자의 삶이 모두 바쁘고 모두 여유가 없어지다보니 다들 엄마의 안을 채워주질 못하더라. 나는 이해심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라서 모두가 그러는 이유가 이해가 됐고, 그 사람들이 엄마에게 뭐라고 하면 나는 왜인지 또 싸우는 게 싫어서 엄마한테 그 사람들이 했던 말을 똑같이 엄마한테 하게 됐어.
근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정말 미안해. 내가 생각하기에 엄마... 엄마가 늘 참아주니까, 엄마가 참고 넘어가면 싸움이 안 날테니까 그래서 엄마한테 뭐라고 했던 것 같아.
정말 미안해. 엄마는 그렇게 참고 참다가 결국엔 하늘나라로 가버린 걸텐데. 다시 만나면 엄마한테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예쁘다고 말하고 엄마한테 뭐라고 하는 사람들을 엄마 편에 서서 같이 싸워주고 싶어. 나는 그래서 사실 지금 세상에 남아서 나를 위로해주지만, 엄마를 힘들게 했던 남은 사람들이 좀 많이 미워. 근데도 남은 삶은 행복해야한다는 생각때문에 그 미움을 덮어놓고 살고 있어.
엄마 그리고 나는 엄마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숨기지 않아. 나는 엄마가 아파서 간 거라고 생각하고 있거든. 스스로 삶을 마감했어도, 엄마는 며칠 전까지 되게 밝았고 엄마만의 삶을 살 줄 아는 사람이었어. 모두 엄마가 마음이 쇠약해서 갔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엄마가 어려서부터 외롭게 자랐음에도 언니와 나에게 사랑을 줄 줄 알았고, 우리를 위해서 힘든 것도 참았고 이렇게 밝게 키워줄 수 있었던 건 정말 엄마가 강해서였다고 생각하고 있어. 나는 사실 엄마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살아있을 때도 그걸 굉장히 많이 느끼고 있었다? 그런 엄마를 앗아간 건 조현병 때문이지 엄마가 정말 이 세상을 힘들게 살아서 간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어.
그리고 찾아보니까 다른 유족들도 전부 가족이 그리 떠났다는 걸 숨기고 살아서 슬퍼하더라고. 나도 아빠가 다른 사람이 물어보면 심장마비로 가셨다고 하라고, 너는 그렇게 생각 안 해도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너를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해서 엄마 죽고나서 며칠 간은 되게 짜증나고 슬펐어. 근데 유퀴즈에 윤경호라는 배우가 나와서 어머니가 자살로 돌아가셨다고 이야기 하면서 막 우는 거야?? 난 그걸 보고 별로 이상하다고 생각도 안 들고 되려 그 사람이 그런 일을 겪었는데도 밝게 잘 살아가는 걸 보고 되게 위안이 됐어.
그래서 나도 다른 유가족들에게 자살로 죽은 게 부끄럽고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기도 하고(내가 뭐라도 되는 것 마냥 ㅋㅋ 그치만 자신감 있어서 좋자네) 내 주변 사람들은 그런 걸 들어도 나를 불쌍한 아이, 동정해야 하는 아이처럼 보지 않는 좋은 사람들이 차고 넘치니까 나는 그냥 당당하게 엄마가 평소에 앓던 정신 질환이 있어서 가셨다고 말하려고. 직접적이게 말하진 않지만 다들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겠지. 아빠한테 이런 내 생각을 말했더니 아빠도 그래, 네가 편한 게 제일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으면 그렇게 말하고 다니라고 했어. 엄마가 그렇게 갔어도 우리 가족 모두 힘내면서 서로 위로하면서 잘 지내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요. 근데 이런 걸로 서운해 하진 마 ㅋ 엄마가 먼저 가버린 거잖아!! 그리고 엄마도 내심 우리 남은 가족이 잘 지내길 바랄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ㅎ...
엄마가 그렇게 스스로 갔다는 선택을 존중하고 (물론 힘들면 죽으면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야.) 엄마도 하늘에서 아 내가 왜그랬지 하고 한탄하고 있을 모습을 생각하니까 좀 꼬시기도 하고, 이게 엄마만의 나를 독립시키는 방법!? 하고 생각하니까 웃퍼서 몇십 년 뒤엔 엄마 얼굴을 밝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엄마가 나에게 잘해줬던 것들 나와 있어서 즐거워했던 모습들을 생각하면 행복해져서 엄마가 그렇게 갔다는 것 자체에는 막 엄청 슬픈 느낌이 없어. 엄마가 이렇게 나를 밝게 잘 키워놨어. 정말 엄마 너무 고마워.
그렇지만 또 한 편으로는 나는 이렇게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은데 엄마는 그 사람들 없이 외롭게 갔다는 생각에, 세상을 외로워하며 살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장례식장에 부를 엄마 지인을 찾는데 생각보다 많이 없었다는 것에 좀 많이 슬퍼지기도 해. 엄마 근데 엄마 죽고나니 알겠지? 엄마가 별로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다 엄마 죽음에 슬퍼하고 엄마 보러 납골당까지 가고 막 그랬잖아. 엄마, 나도 사람들이 다 나한테 딱 맞는 좋은 면모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양면성이 있으니까... 엄마도 그걸 좀 일찍 깨달았으면 삶이 좀 편했을텐데, 너무 우리 가족에만 집중해주느라고 나이 50 먹을 때까지 그걸 몰랐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또 미안해진다.
엄마 이만 말 줄일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나 지금 할 일 해야해서 ㅋ 우린 자주 만날 거니까 ㅎㅎ. 내가 카톡으로 연락도 자주자주 넣어주잖아. 하늘에서 그리워하지 말고 미안해 생각 말고 엄마 인생을 거기선 즐겁게 사셔. 좋은 사람도 많이많이 만나고. 내가 아빠 운동도 데려가고 교회도 데려가고, 좋은 모습으로 또 엄마 만나러 갈게요. 엄마 만나러 갈때 지상에서 내 나이는 80 90 이렇겠지만 천국에 갈 땐 엄마랑 헤어졌던 어린 들콩 모습으로 만나러 가야지.
엄마 나 엄말 정말 좋아했고 사랑했고 지금도 엄마를 추억하면 고마운 기억밖에 없어요. 못해준 게 많아서 미안하고 짜증 많이 내서 미안해.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 우리 몇 십년 뒤에 또 말 주고 받아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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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푸리야)
20251021104853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 활동가 푸리야입니다
껑 님의 엄마에게 쓴 글. 긴 글임에도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는데 점점 제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걸 느꼈습니다. 물론 군데군데 울컥하며 핑계김에 훌쩍이긴 했지만 제 마음이 따듯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껑 님이 한없이 고맙고 고마웠습니다. 제가 오히려 껑 님한테서 위로받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그래. 잘 살자. 이 겨울을 지난 해보다는 덜 춥게 보내자’ 하고 나자신에게 약속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고맙습니다.
이번 주 일요일이 아들의 9주기이다보니 내내 마음이 뒤숭숭하고 많이 추웠습니다. 10월이 되면서 아니 가을에 접어들면서 마음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어제도 땅 밑에 뒹구는 이른 낙엽들을 보는데 또 뜬금없이 눈물이 나면서 아들 이름을 부르고 있는 저 자신을 보았습니다.
아들을 보낸지 9년이 지났든 엄마를 보낸 지 15일이 지났든 여전히 엄마의 부재가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고 문득문득 엄마가 그리워 마음이 엉킬텐데 그럼에도 하늘에서는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예쁘다고 기억하고 있는 껑 님을 존중합니다. 그래서 저도 껑 님을 따라가며 껑 님의 엄마를 그려봤습니다. 엄마가 잘 지내고 있을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고 말할 때는 저도 10월 내내 저를 누르고 있던 돌덩이가 걷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엄마를 힘들게 했던 남은 사람들이 많이 밉지만 남은 삶은 행복해야한다는 생각때문에 그 미움을 덮어놓고 살고 있는 그 포옹의 마음도 저에게 좀더 너그럽고 희망적으로 아들 없는 세상을 바라보게 했습니
[전체 내용은 글쓴이에게만 보입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 활동가 푸리야입니다
껑 님의 엄마에게 쓴 글. 긴 글임에도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는데 점점 제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걸 느꼈습니다. 물론 군데군데 울컥하며 핑계김에 훌쩍이긴 했지만 제 마음이 따듯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껑 님이 한없이 고맙고 고마웠습니다. 제가 오히려 껑 님한테서 위로받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그래. 잘 살자. 이 겨울을 지난 해보다는 덜 춥게 보내자’ 하고 나자신에게 약속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고맙습니다.
이번 주 일요일이 아들의 9주기이다보니 내내 마음이 뒤숭숭하고 많이 추웠습니다. 10월이 되면서 아니 가을에 접어들면서 마음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어제도 땅 밑에 뒹구는 이른 낙엽들을 보는데 또 뜬금없이 눈물이 나면서 아들 이름을 부르고 있는 저 자신을 보았습니다.
아들을 보낸지 9년이 지났든 엄마를 보낸 지 15일이 지났든 여전히 엄마의 부재가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고 문득문득 엄마가 그리워 마음이 엉킬텐데 그럼에도 하늘에서는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예쁘다고 기억하고 있는 껑 님을 존중합니다. 그래서 저도 껑 님을 따라가며 껑 님의 엄마를 그려봤습니다. 엄마가 잘 지내고 있을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고 말할 때는 저도 10월 내내 저를 누르고 있던 돌덩이가 걷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엄마를 힘들게 했던 남은 사람들이 많이 밉지만 남은 삶은 행복해야한다는 생각때문에 그 미움을 덮어놓고 살고 있는 그 포옹의 마음도 저에게 좀더 너그럽고 희망적으로 아들 없는 세상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아울러 엄마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숨기지 않고 엄마가 마음이 아파서 간 거라고 생각하고 다른 유가족들에게도 자살로 죽은 게 부끄럽고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하는 껑 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껑 님을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사실 며칠 전 <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썼던 백세희 작가가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작가의 책을 잘 읽었고 북토크에도 한번 간 적이 있었기에 더 마음이 어수선했습니다. 그의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희망을 갖게 하겠구나 했는데 자기 자신은 많이 힘들었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시렸습니다. 그렇지만 껑 님의 글을 읽고 또 읽으면서 그 젊은 작가의 영원한 안식을 빌 수 있었고 남은 가족들에게도 깊은 위로를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껑 님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차고 넘치니까 당당하게 엄마를 이야기하고, 엄마는 어려서부터 외롭게 자랐음에도 언니와 나에게 사랑을 줄 줄 알았고, 우리를 위해서 힘든 것도 참았고 이렇게 밝게 키워줄 수 있었다고, 엄마는 강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껑 님같은 딸을 둔 엄마는 정말 모든 것을 다 가진 엄마였습니다. 엄마는 껑 님이 바라는 대로 잘 살고 계실 것입니다.
‘엄마가 이렇게 나를 밝게 잘 키워놨어. 정말 엄마 너무 고마워. 엄마, 나 엄말 정말 좋아했고 사랑했고 지금도 엄마를 추억하면 고마운 기억밖에 없어요.’
우리 유가족들도 모두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곁을 떠난 사랑하는 가족에게 미안함도 있지만 가장 큰 마음은 고마움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껑 님의 말들을 곰곰 생각해보면 모두가 결국 저에게 하는 말이었고 아니 저 뿐만 아니라 모든 유가족에게도 새로운 하루를 열고 새로운 길을 찾자는 희망의 메시지로 다가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갑자기 겨울이 온 듯 많이 추워졌습니다. 껑 님도 저도 덜 추운 겨울을 보내기를 바라며 우리 함께 잘 살아갑시다. 사랑합니다.
살고있는 거주지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정신건강전문가와 1:1 상담 가능합니다. 위치와 정보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홈페이지 자살예방 기관검색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kfsp.or.kr)
p.s. 아래의 정보는 즉각적인 전화 상담이 필요할 때, 도움 받으실 수 있어 안내드립니다. -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착한아들
잊고싶지 않은 엄마에게
엄마 착한아들로 저장되어 있는 나야 ㅎ
돌아오는 주면 양력으로2년차네
작년에도 글을 썼던 것 같은데 1년에 한번 씩은
쓰게 되는 거 같다. ㅎㅎ 어떡해! 정말 얘기 할 곳이 없는게 우리 모습 인걸 ㅠㅠ
몇달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오 나에겐
아빠랑 대화도 하고 가족끼리 다같이 정신의학과 상담도 가게되니 참 많은 경험을 하게 되는 거 같아..ㅎ ( 나는 우울 수치가 가장 높구 아빠는 신경쇠약이 왔다고 햄 그래서 둘다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지 한달? 되어가요
동생은 구래두 씩씩하게 살아갈 힘이 있데)
오늘은 왜 왔냐면 2년째 방치된 우리집 처럼
방치된 엄마 카톡이 다른사람으로 바껴있던걸 오늘 알게된거야 ! 무슨 엄마가 남자배우로 바껴 있길래 아차 싶었지 ㅠ
최근에 카카오톡이 개편하면서 사진이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보여지고 그렇게 되면서 세상이 시끄러워^^ 엄마는 또 그런거 올리는거 보여지는거 싫어했던걸로 기억행 나는 그래서! 내가 잠도 못자구 고민하는거지
유족프로필을 하면 그래도 엄마의 카톡 프로필이 남아지는 시스템이 있데 그런데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어서 내일 물어볼까 싶어..
(사진은 최대한 내가 센스껏 해볼게 그래도 내가 오늘 부랴부랴 백업하고 고생한거 때문이라도 5년만 엄마 의사 없이 진행할래!)
아무튼 오늘은 그런 하루였오 상관없음 으로 바껴져 있던 우리 엄마카톡이 여기까지 오게 한것 같은데 엄마 나 아직 일어설 힘이 부족한거 같아..솔직히 엄마 얼굴 취업해서 당당하게 보고 싶은데 내가 미안하고 초라한 것 같아서 나는 이번엔 엄마보러 안가게.. 엄마 못보러간지 이제 1년 넘게따 그래도 계속 구직활동 하고 있으니깐 내가 꼭 성공해서
ㅎ 엄마가 좋아하는 꽃 이마아안큼 준비해서 갈게 거기서 편안하게 쉬면서 응원도 해줘 우리가족 모두 다 엄마 얼굴이 기억안날거 같다 꿈에 한번만 나와줘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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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별바라기)
20250930132436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활동가입니다.
어느 덧 무덥던 여름이 지나고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한 가을의 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날들입니다. 주위에 꽃무릇이 군락을 지어 피어 있는 것을 보면 함께 하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착한아들님이 남겨주신 글을 읽으며 마치 학교 수업을 마치고 엄마에게 하루의 일과를 미주알 고주알 얘기하고 있는 착한아들님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착한아들님의 닉네임처럼 착한아들님은 섬세하고 마음이 따뜻한 분이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착한아들님도 긍정적으로 변화를 했다는 점에서 응원을 드리고 싶습니다. 흐를 것 같지 않던 시간도 흘러가고 변하지 않고 멈춰만 있을 것 같던 상황들도 보이지 않게 조금씩 변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변화를 한다는 것은 수고와 고통이 따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변화를 맞이해야 합니다. 왜냐면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에서 흐르는 물이 강이 되고 바다가 되어 수증기가 되어 다시 산으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멈춰있는 것이 아닌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들이 필요합니다.
작년에도 얘기함에 글을 남겨주셨다 하여 착한아들님께서 남겨주신 글을 찾아 보았습니다.
그 때는 엄마와 이별한지 6개월 정도의 시점이었던 듯 합니다. 엄마의 빈자리를 많이 느끼며 엄마를 그리워하며 잘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남겨주셨습니다.
지금 현재의 착한아들님의 모습은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며 열심히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안도가 됩니다. 스스로 노력해주시는 모습에 더 응원을
[전체 내용은 글쓴이에게만 보입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활동가입니다.
어느 덧 무덥던 여름이 지나고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한 가을의 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날들입니다. 주위에 꽃무릇이 군락을 지어 피어 있는 것을 보면 함께 하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착한아들님이 남겨주신 글을 읽으며 마치 학교 수업을 마치고 엄마에게 하루의 일과를 미주알 고주알 얘기하고 있는 착한아들님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착한아들님의 닉네임처럼 착한아들님은 섬세하고 마음이 따뜻한 분이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착한아들님도 긍정적으로 변화를 했다는 점에서 응원을 드리고 싶습니다. 흐를 것 같지 않던 시간도 흘러가고 변하지 않고 멈춰만 있을 것 같던 상황들도 보이지 않게 조금씩 변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변화를 한다는 것은 수고와 고통이 따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변화를 맞이해야 합니다. 왜냐면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에서 흐르는 물이 강이 되고 바다가 되어 수증기가 되어 다시 산으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멈춰있는 것이 아닌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들이 필요합니다.
작년에도 얘기함에 글을 남겨주셨다 하여 착한아들님께서 남겨주신 글을 찾아 보았습니다.
그 때는 엄마와 이별한지 6개월 정도의 시점이었던 듯 합니다. 엄마의 빈자리를 많이 느끼며 엄마를 그리워하며 잘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남겨주셨습니다.
지금 현재의 착한아들님의 모습은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며 열심히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안도가 됩니다. 스스로 노력해주시는 모습에 더 응원을 보내며 다만 높은 우울수치는 염려가 됩니다. 가족들과의 관계도 원만해진 것 같아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주면 그토록 보고 싶던 엄마의 기일일텐데....
많이 힘들 것임을 압니다. 그래도 잘 이겨내시리라 믿습니다.
마음껏 슬퍼하며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니 슬프면 눈물로 마음을 표현해 주세요.
제 때 표현해주지 못하면 마음의 상처가 더 곪아질 수 있으니 슬프면 맘껏 울고 슬퍼해주세요.
그리고 하루에 최소 30분씩은 햇빛이 내리쬐는 곳에서 걸어주세요.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오직 착한아들님만 생각하며 걸어주세요.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힘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처럼 얘기함에 들러서 착한아들님의 마음속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어디에도 하지 못할 말들, 마음 속 깊이 간직한 마음들을 터놓고 얘기해주세요.
자신의 마음을 글로 남긴다는 것은 마음의 위안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하니 꼭 들러주세요.
그리고 여건이 되시면 유족들의 모임인 자조모임에 참여해 보실 것을 권유드립니다.
유족들의 모임인 자조모임에 참석하시면 위로와 지지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같은 경험을 했기에 함께 울고 함께 공감하며 위로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맘껏 울 수 있어서 함께 울어주어서 더 위로가 될 것입니다.
시간과 장소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홈페이지 또는 얘기함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다음은 박노해 시인의 ‘다시 꿋꿋이 살아가는 법’입니다.
다시 꿋꿋이 살아가는 법 - 박노해
꼬박꼬박 밥 먹고 힘내기
깨끗이 잘 차려 입고 자주 웃기
슬프면 참지 말고 실컷 울기
햇살 좋은 나무 사이로 많이 걷기
고요에 잠겨 묵직한 책을 읽기
좋은 벗들과 좋은 말을 나누기
곧은 걸음으로 다시 새 길을 나서기
이 시에서의 모습은 먼저 떠난 엄마가 착한아들님에게 바라는 모습일것입니다. 취업준비로 많이 힘드실 줄 압니다. 그렇다고 너무 의기소침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엄마가 바라는 착한아들님의 모습은 당당하고 씩씩한 모습일테니까요!
그리고 같은 상실을 경험한 동료지원활동가가 곁에 있음을 기억하시고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것도 꼭 기억해주세요!!!
일교차가 큰 날씨에 감기 걸리지 않도록 건강 잘 챙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얘기해요 기억해요 함께해요.
살고 있는 거주지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정신건강전문가와 1:1 상담 가능합니다.
위치와 정보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홈페이지(https://www.kfsp.or.kr) 자살예방 기관검색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p.s. 아래의 정보는 즉각적인 전화 상담이 필요할 때, 도움 받으실 수 있어 안내드립니다.
-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활동가 별바라기 드림
미소
휘몰아치는 감정에 나 혼자 있는 기분
아빠.
우리 가족은 엄마, 아빠, 딸 4명인 가족이었잖아
근데 아빠가 떠나고 나서 우리는 모두 분리가 된 기분이야.
다들 가면을 쓰고 아무렇지 않은 척해
엄마는 아빠 얘기가 조금이라도 나오면 죄책감에 휩싸여서 말도 못하게 해.
내가 아빠 얘기를 하면서 울면 엄마가 더 크게 울어서 나는 울지도 못해.
그게 10년동안 누적되니 나도 지치더라. 집에서 울지도 못하고 술을 마시지도 못해..
이제 가족들이랑 말하기도 싫어졌어.
나는 타지생활하며 가끔 가족을 봤지만 이런 감정이 명확해진 후에는 안보고 있어.
그냥 흘러가는대로 물처럼 살고있어.
가끔 나도 감당하기 힘들정도의 우울감이 나를 덮쳐올 때면 그정도의 우울감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아빠처럼 높은 곳을 찾고있는 나를 발견해.
상담샘 말씀으로는 그 우울감을 느낄 때 아빠가 죽었던 그 때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하셨어.
10년 전에 우리 가족들과 함께 아빠를 애도하지 못한 후폭풍이 지금 여기서 나한테 오는 것 같아.
아빠. 나는 지금 그 후폭풍 속에 들어와서 이겨내려고 하고 있어.
근데 아빠.
언니나 엄마는.. 아직 그 폭풍 속으로 들어올 생각을 안해. 다들 다른 일을 하면서 아빠를 지우고 잊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여. 그래서 내 눈엔 다들 가시돋친 사람들처럼 사람들을 공격하는거같아.
내가 아빠에 대한 애도를 하고 혼자있는 것에 익숙해질 때쯤 내가 다시 가족들을 만날 수 있을까.
이 폭풍 속에 혼자 있는 내가 너무너무 힘들어서 뛰쳐 나가고 싶어진다면, 이 일을 잊고 그냥 평범한 사람처럼 살려고 한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지금은 뭐가 맞는건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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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행복소울지기)
20250929094825
안녕하십니까?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활동가 행복소울지기입니다. 떠난 가족을 애도하고, 슬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 감당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도 누구보다도 잘 아는 현실에서 살고 있는 저 또한 유족자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헤쳐나가고 있는 미소님 입장에서는 슬픔 과거에 머물 필요는 없다는 얘기를 해 드리고 싶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힘을 받기 위해서는 좋은 추억으로 힘을 얻어내야 합니다. 아빠의 존재가 나에게 미친 영향이 헤어진 그 때뿐은 아니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아빠와의 좋은 추억도 많을 것입니다. 그 좋은 추억도 되새기면서 나 자산이 지금 현재 아빠라는 존재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를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어느 누구도 영원한 존재는 없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그 존재가 사라졌을 때 슬픔을 애도합니다. 그리고 좋은 추억만 되새기려 합니다. 하지만 유독 병이나 교통사고가 아닌 자의적인 사고로 떠난 이들에게는 추모하는 것 조차 유가족들은 부끄러워하고, 수치스러워합니다. 죽음의 일종일 뿐인데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 트라우마는 유가족의 몫이 되어버리는 현실에서 미소님은 이제 자신이 왜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지를 반문해보는 용기도 필요할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아빠가 떠나고 10년이 지난 현재시점에서 미소님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으시나요? 계획없이 하루하루를 아무 의미없이 보내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이제부터라도 미소님의 가치있는 생활을 찾아보셨으면 합니다. 아빠가 멀리서나마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이제부터라도 미소님의 가치있는 생활을 찾아보셨으면 합니다. 아빠가 멀리서나마 지켜보고 있으
[전체 내용은 글쓴이에게만 보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활동가 행복소울지기입니다. 떠난 가족을 애도하고, 슬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 감당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도 누구보다도 잘 아는 현실에서 살고 있는 저 또한 유족자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헤쳐나가고 있는 미소님 입장에서는 슬픔 과거에 머물 필요는 없다는 얘기를 해 드리고 싶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힘을 받기 위해서는 좋은 추억으로 힘을 얻어내야 합니다. 아빠의 존재가 나에게 미친 영향이 헤어진 그 때뿐은 아니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아빠와의 좋은 추억도 많을 것입니다. 그 좋은 추억도 되새기면서 나 자산이 지금 현재 아빠라는 존재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를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어느 누구도 영원한 존재는 없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그 존재가 사라졌을 때 슬픔을 애도합니다. 그리고 좋은 추억만 되새기려 합니다. 하지만 유독 병이나 교통사고가 아닌 자의적인 사고로 떠난 이들에게는 추모하는 것 조차 유가족들은 부끄러워하고, 수치스러워합니다. 죽음의 일종일 뿐인데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 트라우마는 유가족의 몫이 되어버리는 현실에서 미소님은 이제 자신이 왜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지를 반문해보는 용기도 필요할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아빠가 떠나고 10년이 지난 현재시점에서 미소님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으시나요? 계획없이 하루하루를 아무 의미없이 보내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이제부터라도 미소님의 가치있는 생활을 찾아보셨으면 합니다. 아빠가 멀리서나마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이제부터라도 미소님의 가치있는 생활을 찾아보셨으면 합니다. 아빠가 멀리서나마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힘들 때 종교의 힘을 찾아 힘듬을 극복하려 합니다. 미소님은 아버님의 자상한 면을 그리워하면서 삶의 원동력을 찾아내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 지를 이해할 때 비로소 다른 가족들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고, 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힘든생활을 버터내는 것은 빨리 지치지만, 힘들지만 이왕 해야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해낸다면 미소님은 더 나은 '나'를 찾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그렇게 하루선물을 가치있게 써보지 않으시렵니까? 그러나다 너무나 힘들어 버틸 수 없다고 느껴지면 심리부검도 한번 해 볼 것을 조심스레
권장해 봅니다. 대부분의 유족자분들이 심리부검을 했을 때 그 당시는 너무나 힘들지만, 끝나고 나면 후련하다는 얘기를 하십니다.
시작할 때는 어떤 것이든 용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 용기의 첫 돋움을 이제는 미소님의 가치있는 삶을 찾는 것에 쓰여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오늘도 새로운 도전의 시작으로 월요일을 보내셨으면 합니다. 언제나 응원하겠습니다.
살고 있는 거주지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정신건강전문가와 1:1 상담 가능합니다.
위치와 정보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홈페이지(https://www.kfsp.or.kr) 자살예방 기관검색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래의 정보는 즉각적인 전화 상담이 필요할 때, 도움 받으실 수 있어 안내드립니다.
-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카메라
아빠, 안녕?
아빠 진짜 오랜만에 편지쓰지? 아빠 딸이 요즘 많이 바빴어… 16살이였던 아빠의 딸이 지금은 벌써 23살이라는 나이가 되었고 21살이라는 나이에 입사해서 나 벌써 2년차 직장인이야!
아빠 딸 대견하지?
물론 지금 직장말고 전 직장다닐때 나 너무 힘들었어 가족들이 놀러오는 전시관에서 일했는데 거기있는 아이들은 내또래 애들은 다 아빠한테 사진 찍어달라고 하면서 사진찍고 투정부리고 싸우고 막 그러더라… 특히 아빠랑 헤어졌을때 나와 또래애들은 더욱더 눈길이 갔어 그래서 그런지 마음도 몸도 힘들어서 핑계를 대며 퇴사해버렸지 뭐야… 아빠 딸 참 쪼잔하고 대책도 없지?
다행히 지금은 다른 직장에서 잘 적응하고 있어!
참! 나 운전실력은 아주그냥 아빠 똑닮았다고 엄마가 그런다? 입 거친거까지 똑같다고 큰일이래! 우리아빠 운전잘했으니 칭찬이겠지?
아 최근에는 회사 셔틀버스 탔는데 기사님이 아빠 이름을 물어보는거야! 그래서 설마설마 했는데 아빠 친구분이더라? 우리 어렸을때도 커서도 아빠 단짝처럼 캠핑다니시던 삼촌!
참 신기하지? 삼촌만 만나면 아빠 이야기만 해 삼촌도 나도 아빠가 너무 보고싶나봐
아빠한테는 미안하지만 사실 아빠 많이 미워 미워하기 싫은데도 미워
딱 그날 있기 몇일전에 우리 화해했잖아 근데 그렇게 확 가버리기 있어? 내 결혼식장에 손잡고 들어가고 내 결혼사진 아빠 찍어줘야지
우리아빠 사진 잘 찍는다고 내가 소문냈었는데…
그래도 난 엄마랑 우리동생들한테 미안해
내가 차라리 아빠를 발견했으면 엄마도 애들도 괜찮았을까? 그런생각이 머리를 안떠난다?
정말 어제일처럼 하나하나 다 생각이 나 영안실에서 보던 우리아빠도 아빠사진이 걸려있는 영정사진을 볼때도 엄마가 넋나가 있는것도 전부
퇴근하면서 셔틀에서 적는데 눈물나잖아…
뭐가 급했어 할머니,할아버지 보고싶어도 조금만 참지….
그이후에 한달간의 엄마랑 애들이랑 생각만 나 난 그때 뭐한지도 내가 뭘한지도 모르겠어
다들 나보고 엄마대신 너가 동생들 돌봐라 엄마도 같이 돌봐라 해서 그런가? 나 그때부터 기억이 별로 없어 왜인지 모르겠네…
거기서는 아빠가 좋아하던 사진 잘 찍고 있어? 우리아빠 사진실력 좋은거 거기서 소문내줄 사람도 있고?
아차! 아빠가 잘하는 목공도 같이 보여줘야 하는거 알지?
그래도 최근에 아빠 꿈에 나와서 좋더라 얼굴은 왜인지 기억에서 희미해지는데 그 사람이 우리아빠인건 내가 한번에 알아보겠더라고 그런데… 남자친구 맘에 안들었어? 왜 소개시켜주니까 꿈이 깼잖아…
남자친구 생기면 우리아빠가 어떤 반응일까 남자친구한테 뭐라고 말할까 그런생각 많이 하는데… 아빠는 뭐라 말할거야? “내 딸한테 잘해라?” 할거야? 아님 딸바보 우리아빠는 “헤어져!” 할거야?
벌써 7년이다 시간 빠르지? 그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지만 아빠가 옆에서 자켜보고 있었다는거 다 알아 엄마가 큰아빠랑 큰고모들이랑 싸우자마자 엄마 꿈에 나와서 화냈다며? 2년전에 새로 온 우리 새식구 고양이도 아빠 제사 지내면 설,추석 제사 지내면 허공을 바라보더라 물론 고양이가 귀신을 본다는 미신은 안 믿는데! 그때만큼은 믿게 되더라 우리 새식구 고양이 귀엽지? 나만 좋아하는 고양이야!
쓰다보니 그냥 두서없는 글이 되어버렸네
아빠 나는 잘 지내 엄마도 애들도 아빠친구들은 아빠가 보고싶데
하지만 그래도 아직 아빠가 이렇게 하늘을 여행하게 되었다는걸 말못했어 미안해 말해야할지말지 아직도 고민중이야
우리 다 잘지내고 있고 엄마는 나랑 애들이랑 이모에 외할머니,할아버지까지 다 돌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곧 아빠 제사인거 알지? 우리아빠가 좋아하는 전보다는! 내가! 엄마가! 좋아하는 전 올릴거니까 서운해 하지말고
마지막으로 보고싶은 아빠 7년이 지나도 그날의 아픔은 장례식장과 응급실에서의 4일의 이야기는 그이후에 일어난 이야기들은 영원히 못 잊을거 같아. 나쁜 아빠… 다음생에도 아빠 해주라 이번생에 못한거 까지 다 해주게
그리고 왜 유서는 안남겼어… 나 그 뒤로 엄마몰래 맨날 그곳에 가서 찾았잖아
결국 있던건 구급대원이 출동한 종이뿐이였지만
그리고 동생들 꿈에도 쫌 나와라… 애들이 아빠가 자기 꿈에 안나온다고 서운해 하잖아 가서 이놈의 시키들! 하면서 어떤일 있었는지 좀 들어주고 그래봐 다들 보고싶어해
아빠 더 쓰면 셔틀에서 펑펑 울거 같아서 그만 줄일께 사랑하는 우리아빠 밉지만 보고싶고 사랑하고 언제나 우리 지켜봐줘? 알겠지?
거기서 예쁜 사진도 많이 찍고 먼 미래에 우리 다시 만나면 사진들 자랑해줘야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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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푸리야)
20250923153515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 활동가 푸리야입니다
아빠와 대화하듯 쓴 카메라 님의 글을 따라가며 제 마음이 들뜨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니 편안했고 주변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새 딸이 23살이 돼서 2년차 직장인 것도 대견하지만 카메라 님이 아빠한테 투정하면서도 직장생활에 잘 적응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이 아빠로서 참 뿌듯하고 기특할 것 같습니다.
카메라 님은 저에게도 큰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9년 전 아들을 보낸 후 저는 항상 무엇인가가 제 몸을 무겁게 누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잘 살아야 해’하고 마음을 굳혀도 밤이 되면 불현듯 마음이 엉키곤 했습니다. 그런데 카메라 님이 아빠에게 한 대화를 읽고 또 읽으면서 왜 ID를 카메라로 했는지 이해됐고 불쑥 책 <딸기 따러 가자>가 생각났습니다.
<딸기 따러 가자>는 제가 좋아하는 책입니다. 아들이 너무 그리울 때 막연히 먹먹할 때 불쑥 가슴이 서리면서 눈물이 나려고 할 때 저는 부리나케 이 책을 펴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것 같으면 넌 무얼 할 거니?”/ “그럼 딸기 따러 가는 거야”/ “우리 딸기 따러 가자.” - 모오크족 인디언 할머니의 말.
인디언 할머니는 종종 뭔가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길을 잃은 것 같을 때, 낙심하고 주저앉지 않고 아이들을 일찍 재우고는 양동이 하나를 챙긴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다섯 시 반, 온 식구를 깨워서 말씀하신대요. “딸기 따러 가자”고.
“딸기 따러 가자”는 말이 참 뜬금없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문득문득 이 말이 생각나면 가슴이 쿵! 했습니다
[전체 내용은 글쓴이에게만 보입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 활동가 푸리야입니다
아빠와 대화하듯 쓴 카메라 님의 글을 따라가며 제 마음이 들뜨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니 편안했고 주변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새 딸이 23살이 돼서 2년차 직장인 것도 대견하지만 카메라 님이 아빠한테 투정하면서도 직장생활에 잘 적응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이 아빠로서 참 뿌듯하고 기특할 것 같습니다.
카메라 님은 저에게도 큰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9년 전 아들을 보낸 후 저는 항상 무엇인가가 제 몸을 무겁게 누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잘 살아야 해’하고 마음을 굳혀도 밤이 되면 불현듯 마음이 엉키곤 했습니다. 그런데 카메라 님이 아빠에게 한 대화를 읽고 또 읽으면서 왜 ID를 카메라로 했는지 이해됐고 불쑥 책 <딸기 따러 가자>가 생각났습니다.
<딸기 따러 가자>는 제가 좋아하는 책입니다. 아들이 너무 그리울 때 막연히 먹먹할 때 불쑥 가슴이 서리면서 눈물이 나려고 할 때 저는 부리나케 이 책을 펴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것 같으면 넌 무얼 할 거니?”/ “그럼 딸기 따러 가는 거야”/ “우리 딸기 따러 가자.” - 모오크족 인디언 할머니의 말.
인디언 할머니는 종종 뭔가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길을 잃은 것 같을 때, 낙심하고 주저앉지 않고 아이들을 일찍 재우고는 양동이 하나를 챙긴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다섯 시 반, 온 식구를 깨워서 말씀하신대요. “딸기 따러 가자”고.
“딸기 따러 가자”는 말이 참 뜬금없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문득문득 이 말이 생각나면 가슴이 쿵! 했습니다. 웅크리고 있는 저를 벌떡 일어나게 했습니다. 온 식구를 깨워 “딸기 따러 가자”고 하는 인디언 할머니의 말은 결국 저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새로운 하루를 열고 새로운 길을 찾자는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런데 카메라 님이 줄곧 저에게 “딸기 따러 가자”고 하는 겁니다. 아빠의 말을 영혼의 귀로 듣고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카메라 님이 무척 부럽고 대견했습니다.
저에게 “딸기 따러 가자”고 손잡아 주었듯이 엄마와 동생들에게도 항상 씩씩하게 “딸기 따러 가자”고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카메라 님이 좋고 고맙습니다.
아빠가 밉지만 보고 싶고 사랑하고 언제나 우리를 지켜봐 주기를 바라고 다음 생에도 아빠 해주라고 그리고 동생들 꿈에도 쫌 나오라는 카메라 님의 마음은 이미 아빠에게 전해졌을 것입니다. 아빠는 항상 카메라 님의 가슴에 있다는 것이고 항상 곁에 함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힘든 일이 생길 때 “아빠, 나 운전실력은 아주 그냥 아빠 똑닮았대. 아빠 단짝처럼 캠핑 다니시던 삼촌도 아빠 무척 보고 싶어 해” 하며 이야기를 건네거나 이렇게 얘기함에서 아빠와 대화하면서 아빠를 만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아들을 만나고 있고 아들이 곁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으니까요.
아빠는 카메라 님이 생각하는 대로 좋아하던 사진 잘 찍어서 다시 만날 때 자랑하실 것입니다. 또 아빠가 잘하는 목공도 같이 보여주실 것입니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카메라 님을 보면서 아빠도 하늘나라에서 힘을 얻어 카메라 님처럼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할 것입니다.
카메라 님의 일상은 다른 유가족들에게도 힘이 될 것이고 그 기운으로 우리 함께 잘 살아가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살고있는 거주지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정신건강전문가와 1:1 상담 가능합니다. 위치와 정보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홈페이지 자살예방 기관검색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kfsp.or.kr)
p.s. 아래의 정보는 즉각적인 전화 상담이 필요할 때, 도움 받으실 수 있어 안내드립니다. -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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