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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엄마 보고싶다
엄마 엄마 떠난지 어느덧 4년이나 흘렀어.. 시간이 왜이리 빨라? 안 갈것 같던 시간도 결국은 흐르고, 난 엄마 생각을 하루에 한번도 하지 않는 날들이 쌓여가.
엄마를 잊은건 아니지만, 굳이 생각하려 하지 않는 것 같아. 아직도 내 주변엔 엄마의 흔적들이 남아 .. 남아있어
그리고 요즘의 나는 엄마와 꽤 닮은 얼굴이 되어가 나이가 들면서 성숙해지면서, 엄마 얼굴이 더 닮아가고 있어 그래서 그런지 엄마 안봐도 매일 보는 것 같은지도 ㅎㅎ
가끔 언니가 엄마 이야기를 할때 기분이 나쁠때도 있어 언니는 나랑 다른 관점에서 엄마를 보고 느끼니까. 그래도 언니가 엄마 많이 사랑하는거 엄마도 알잖아 모르려나
언니도 마음의 상처가 커서 그래 엄마
내가 더 똑똑하고 현명했으면 우리 가족 더 잘 지낼 수 있었을까? 엄마 세상에 나보다 힘든 사람들도 많은데 난 아직도 나 힘든게 젤 걱정된다? ㅎㅎ 엄마…. 엄마엄마엄마
나만큼 나 생각해주는거,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편이였던 사람 울엄마. 엄마 사랑해 보고싶어
ㅜㅜ 오늘 너무 보고싶다.. 오랜만에 꿈에 나와줄래? 너무 보고싶어 엄마 보고싶어…
너무너무너무너무 보고싶어
못된 아줌마 ㅜㅜ 다시 만나면 엄마 물거야
진짜 못됐어 안아줘 엄마.. 안아주ㅓ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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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행복소울지기)
20250725111811
엄마의 존재는 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힘을 주는 존재인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상관없이 부재가 되어버린 날은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슬픔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엄마라는 존재가 된 나의 입장에서 자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미안하다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활동가 행복소울지기입니다.
보고싶은 엄마를 나의 선택에 의해서 보지 못할 때 그 허망함과 그 허탈감은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현재 내가 잘 살고 있다면 엄마라는 존재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가 현재 마음이 힘들 때는 엄마라는 존재는 수면 위로 확실하게 올라와 나의 다친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데는 최고의 도구일 것입니다.
그래서 찾게 되지요. 그리고 그 보고싶은 엄마의 얼굴을 보고, 엄마의 젖가슴에 안기면 언제 내가 마음이 다쳤지!
하는 생각 조차 모르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 엄마의 존재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엄마의 존재가치가 큰 것이라 해도, 내 존재보다 클까? 라는 생각도 해 본답니다. 엄마는 나의 분신이 되지는 못합니다.
나 또한 엄마의 분신은 아니지않습니까? 엄마는 나에게 부모로서의 역할을 제공해 줄 뿐이고,
나는 자녀의 역할로서 엄마에게 최선을 다하는 존재일 뿐이다. 인생의 주인공은 내가 엄마가 될 수 없듯이
엄마 또한 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가님이 현재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엄마가 보고 싶으니까요.
엄마의 여행길은 엄마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전체 내용은 글쓴이에게만 보입니다.]
엄마의 존재는 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힘을 주는 존재인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상관없이 부재가 되어버린 날은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슬픔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엄마라는 존재가 된 나의 입장에서 자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미안하다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활동가 행복소울지기입니다.
보고싶은 엄마를 나의 선택에 의해서 보지 못할 때 그 허망함과 그 허탈감은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현재 내가 잘 살고 있다면 엄마라는 존재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가 현재 마음이 힘들 때는 엄마라는 존재는 수면 위로 확실하게 올라와 나의 다친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데는 최고의 도구일 것입니다.
그래서 찾게 되지요. 그리고 그 보고싶은 엄마의 얼굴을 보고, 엄마의 젖가슴에 안기면 언제 내가 마음이 다쳤지!
하는 생각 조차 모르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 엄마의 존재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엄마의 존재가치가 큰 것이라 해도, 내 존재보다 클까? 라는 생각도 해 본답니다. 엄마는 나의 분신이 되지는 못합니다.
나 또한 엄마의 분신은 아니지않습니까? 엄마는 나에게 부모로서의 역할을 제공해 줄 뿐이고,
나는 자녀의 역할로서 엄마에게 최선을 다하는 존재일 뿐이다. 인생의 주인공은 내가 엄마가 될 수 없듯이
엄마 또한 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가님이 현재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엄마가 보고 싶으니까요.
엄마의 여행길은 엄마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는 것이 아가님의 역할 이며,
나중에 엄마를 만났을 때 아가님의 삶을 최선을 다해서 살았노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엄마는 아가님에게 희망할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현재는 아가님이 힘들 때는 얘기함을 찾아 아가님이 현재 보고싶은 엄마에게 얘기하고 싶은 힘든 생활얘기를 들려주세요. 그리고
이렇게 할 것이다라는 목표도 들려주세요. 삶의 중심에 선 내가 이겨내는 방법은 나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빠듯한 생활을 차근차근 설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야지 나의 삶에 희망이 보이면서 엄마의 존재가 항상 지켜보고 있지만 수면위로는 떠오르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버텨내는 하루에 나의 삶에 희망을 찾으면서 오늘도 하루를 잘 보내시길 희망합니다. 엄마도 얘기할 것입니다.
우리 딸! 미안해, 그리고 항상 지켜볼께 하면서 말입니다.
오늘도 나의 소중함을 나에게 얘기하면서 잘 보내시기를 희망합니다.
오늘도 얘기해요. 기억해요. 함께해요
살고 있는 거주지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정신건강전문가와 1:1 상담 가능합니다.
위치와 정보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홈페이지(https://www.kfsp.or.kr) 자살예방 기관검색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래의 정보는 즉각적인 전화 상담이 필요할 때, 도움 받으실 수 있어 안내드립니다.
-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하루
엄마
제 엄마는 1년전 자살을 했습니다.
어릴적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엄마 혼자
사시게 되었는데 혼자서 많이 힘드셨던것
같습니다. 이혼 후에도 저랑 일주일에 한번은 만나서 밥도먹고 데이트도 하고, 연락도 매일
했었는데 엄마는 항상 밝으셨습니다.
엄마의 사망을 접한건 제가 일본여행을 갔다가 귀국 후 한국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한테 들었습니다. 제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하루전 이미 엄마는 돌아가신 상태였었고 일본에서 그 사실을 알게되면 안될거같아서 말을 안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일본에서 재밌게 놀고있었다는 제 자신이 너무 싫습니다. 그렇게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장례식장으로 갔고 영정사진에 걸려있는 엄마의 모습을 봤습니다. 눈물이 안났습니다.
믿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본에 있었을때 저녁에 엄마한테 카톡이 왔었습니다. “사랑해 아들” 저는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했어서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게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였습니다. 제가 군대에 가기 20일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저는 입대를 했고 현재 군생활 중에 있는데, 아무래도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니 많이 힘든것같습니다. 아직 장례식장에서의 기억이 맴돌고 저를 괴롭힙니다. 아직 영안실의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그게 엄마냄새라고 인식하는 제
자신이 너무 싫습니다. 우울함과 불면증때문에 약복용도 하고 치료도 받고있는데 정신병자가 된 기분이 들어서 엄마가 밉기도하고 제 정체성에 대해 혼란도 옵니다. 빨리 낫고싶습니다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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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푸리야)
20250728101450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 활동가 푸리야입니다
하루 님의 글을 접하고 마음이 너무 아파서 하루 님의 글에 한참을 머물러 읽고 또 읽었습니다. 며칠동안 머리 속에 맴돌면서 마음이 무거웠던 것은 무더위 탓도 있겠지만 하루 님의 지난 1년이란 시간에 함께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지난 1년이란 시간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특히 군대라는 틀 안에 있기에 아무리 생각할 시간이 많아도 내 의지대로 헝클어진 마음을 가지런히 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입니다. 그래서 하루 님에게 애썼다고 손잡아 주면서 지난 시간을 응원합니다.
9년 전. 저는 스물일곱의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때 저도 하루 님처럼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내 앞에 벌어진 일들이 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아들에게 ‘도대체 왜?’ 하고 끝없는 질문을 하며 정말 정신병자처럼 땅에 발을 딛지 않고 부유하듯 떠다니는 일상을 살았습니다.
그때 막내는 군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저에게는 막내가 보일 리가 없었지요.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 막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넋을 잃은 부모한테 기댈 수도 없고 혼자 군대라는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어떻게 하루하루를 극복하며 안간힘을 썼을까? 하루 님의 글을 읽으며 9년 전 막내아들이 생각났고 생각할수록 가슴이 찢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루 님이 이만큼 버티어내고 이렇게 얘기함을 찾아 마음을 토해내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저도 엄마로서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곁에 있다면, 면회를 가서 헤어질 때 속으로는 울면서도 겉으로는 막내아들을 힘껏 안아주었듯이 하루 님의 손을 꼬옥 잡아주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전체 내용은 글쓴이에게만 보입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 활동가 푸리야입니다
하루 님의 글을 접하고 마음이 너무 아파서 하루 님의 글에 한참을 머물러 읽고 또 읽었습니다. 며칠동안 머리 속에 맴돌면서 마음이 무거웠던 것은 무더위 탓도 있겠지만 하루 님의 지난 1년이란 시간에 함께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지난 1년이란 시간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특히 군대라는 틀 안에 있기에 아무리 생각할 시간이 많아도 내 의지대로 헝클어진 마음을 가지런히 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입니다. 그래서 하루 님에게 애썼다고 손잡아 주면서 지난 시간을 응원합니다.
9년 전. 저는 스물일곱의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때 저도 하루 님처럼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내 앞에 벌어진 일들이 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아들에게 ‘도대체 왜?’ 하고 끝없는 질문을 하며 정말 정신병자처럼 땅에 발을 딛지 않고 부유하듯 떠다니는 일상을 살았습니다.
그때 막내는 군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저에게는 막내가 보일 리가 없었지요.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 막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넋을 잃은 부모한테 기댈 수도 없고 혼자 군대라는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어떻게 하루하루를 극복하며 안간힘을 썼을까? 하루 님의 글을 읽으며 9년 전 막내아들이 생각났고 생각할수록 가슴이 찢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루 님이 이만큼 버티어내고 이렇게 얘기함을 찾아 마음을 토해내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저도 엄마로서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곁에 있다면, 면회를 가서 헤어질 때 속으로는 울면서도 겉으로는 막내아들을 힘껏 안아주었듯이 하루 님의 손을 꼬옥 잡아주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형을 잃은 동생도 엄마 잃은 하루 님도 씩씩하게 잘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장례식장에서의 기억이 지금도 괴롭고 엄마가 밉기도 하고 정체성에 대해 혼란도 온다는 하루 님의 혼란에 저역시 동감합니다. 저도 9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힘들고 하루에도 몇 번씩 불쑥불쑥 끊임없이 슬픔의 눈물이 밀려오고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이 괴로우니까요. 그러나 이러한 나의 감정은 당연한 것이고 이런 우리의 마음은 당연히 옳습니다. 당연히 괜찮은 겁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어느 날 갑자기 잃었는데 어떻게 이런 혼란이 없을 수 있을까요? 당연하고 옳기에 하루 님. 힘들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루 님. 지난 1년여 시간 많이 애쓰셨습니다. 엄마한테 온 카톡 메시지 “사랑해 아들”이 하루 님을 지탱해 주었고 앞으로도 그것 하나만 붙잡고 나아가길 바랍니다.
작가 이자크 디네센은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딜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밖으로 꺼내 놓지 못하는 슬픔이나 고통은 안에서 곪기 마련이니 문드러지기 전에 밖으로 꺼내 이야기하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저도 이 말을 붙잡고 싶었기에 아들이 그리울 때, 마음이 뒤죽박죽일 때 일기를 쓰고 글을 썼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때그때 나를 토해냈던 시간들이 조금씩 위로와 치유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 님도 마음이 힘들 때 <얘기함>에 오셔서 엄마 이야기를 나눠주시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하루 님이 빨리 낫고 싶어하시는 의지가 있어 그것도 가슴 뭉클하며 고마웠습니다. 저는 한참을 무기력했었기에 다른 유가족들은 저와 같은 일상을 살지 않으시길 정말 바랍니다.
글쓰기를 통해 치유되시길 바라며 얼마 남지 않으셨을 군생활동안 다 치유되고 나아서 사회로 나오시길 바랍니다.
아직 8월도 아닌데 지난 주 비가 온 뒤로는 많이 무덥습니다. 더위에 지지치 않고 쾌적한 여름 보내시길 바라며 우리 같이 견뎌 나갑시다. 함께 하겠습니다.
오늘도 얘기해요. 기억해요. 함께해요
살고있는 거주지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정신건강전문가와 1:1 상담 가능합니다. 위치와 정보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홈페이지 자살예방 기관검색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kfsp.or.kr)
p.s. 아래의 정보는 즉각적인 전화 상담이 필요할 때, 도움 받으실 수 있어 안내드립니다. -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강아지
엄마 안녕
엄마 안녕
어렸을 때부터 까탈스럽고 속 썩여서 미안해
그래도 항상 우리 똥깡아지라고 불러준 게 기억나서 이름은 강아지야 ㅎㅎ
엄마 사실 나는 엄마가 자살할 거라고는 생각한 적 전혀 없다?
나는 오히려 내가 우울증 때문에 먼저 죽지 않을까 항상 생각했었어. 당연히 내가 힘들다고는 말 안 했으니까 몰랐겠지만.
불면증 때문에 새벽 5시쯤 깼을 때 엄마가 분주하게 종량제 봉투에 옷이나 속옷 같은 걸 버리는 걸 보고 또 대청소 하나보다 싶었어. 그러다 엄마가 내 침대에 같이 누워서 딸 사랑해 라고 했던 게 기억나 그리고 엄마가 울었던 것 같아. 난 그걸 보고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어.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아침에 엄마가 패딩을 입고 나갔던 것 같고... 나는 안방 컴퓨터로 그때 좋아하던 게임을 계속 했지
그리고 엄마가 잠깐 들어와서 내가 설거지 해둔 걸 보고 또 급히 나갔던 것 같아. 그때 엄마가 뭐라고 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안 나네.
그렇게 안방에서 게임하다가 밤까지 엄마가 안 와서 난 당연히 옆 아파트 사는 엄마친구랑 노는 줄 알았는데..... 아빠도 당연히 아무 생각 없이 놀러갔다보다 했고. 아빠랑 나란히 쇼파에서 티비 보면서 시계를 봤던 기억이 나. 난 이때부터 그냥 이유없이 불안했었나봐.
저녁이 늦어지고 사고난 건 아닌지 너무 불안해졌을 때쯤 울면서 친구랑 전화하다가 아빠가 안방에 뭐 없나 가보라고 연락 해서 가봤더니 낮에 내가 게임할 때까지도 몰랐던 유서가 협탁에 놓여있었지. 어떻게 나는 유서가 있는 방에서 게임을 계속 하고 있었을까?
엄마는 그날 외할머니,외할아버지 산소도 다녀오며 마음을 잡고 집 주변인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차 안에서 아마 번개탄 같은 거로 생을 끝냈겠지
오빠한테는 전화를 했다는데 오빠가 일로 바빠서 전화내용을 제대로 기억 못하는 건 정말 나빴다고 생각해. 그리고 나한테도 전화 한번 해주지.
낮인지 밤인지 기억이 안 나는데 내가 전화를 계속 걸었을 때까지 엄마는 살아있었지 않을까 생각해. 전화를 거절했을 때 나오는 소리가 나왔으니까. 차 안에서 계속 끊었던건가?
나중에 엄마 휴대폰을 집에 가지고 왔을 때 온 집에 탄 냄새가 나서 번개탄을 확신했던 것 같아.
엄마가 급히 나가는 뒷모습이 영영 잊히지 않을 것 같은데 점점 흐려져 가는 게 싫다.
엄마가 죽었는데, 자살했다는 걸 숨기고 싶어서 장례식에서 애들이 하는 농담에도 오버하며 웃고 오열하던 것도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고 센 척 하던 내 모습이 이제는 좀 부끄럽다.
내가 우울증이랑 불면증으로 힘들 때 아침7시쯤 혼자 부산으로 바다보러 가야겠다 마음 먹고 아무말 없이 나갔을 때 엄마가 빼꼼 현관문 열고 어디가냐고 하던 때가 왜인지 선명해.
나만 힘든 게 아니었는데. 엄마 끌고 좀 놀러다닐걸. 그치?
엄마가 외모에 신경은 썼지만 정말 외모 때문에 그까짓 눈 때문에 죽었다는 게 제일 어이가 없다. 엄마 인생이 너무 불쌍해.
행복한 적은 있었을까?
항상 당차고 밝은 엄마였는데 어떻게 이렇게 됐을까?
슬픔을 묻어버리려 집에서는 엄마에 대해 언급도 못하게 된 우리 가족.. 아마 평생 이 마음의 벽은 견고하겠지.
엄마 미안해 행복하게 해주지 못해서.
대학생이던 내가 졸업도 하고 취업도 하고 다 컸다 그치?
산부인과쪽 병으로 입원하고 수술할 때는 엄마가 없어서 아주 조금 빈자리가 느껴졌어. 하지만 아빠가 빈자리가 안 느껴지도록 정말정말 잘 챙겨줬어. 걱정은 안 해도 돼. 엄마가 유서에도 써놨듯이 아빠가 자식은 참 잘 챙기니까.
아직도 엄마랑 같이 성당 다닐 때 듣던 성가, 대학생 때 엄마랑 두 번 보러 갔던 벚꽃, 엄마가 자주 입던 스타일의 옷을 입은 중년 여성, 파마머리 여성, 엄마가 해줬던 요리의 맛 이런 걸 보고 듣고 느낄 때마다 엄마가 생각나.
엄마 목소리 녹음된 것도 하나 없어서 언젠가는 이 느낌들도 엄마 목소리도 엄마 향기도 잊혀질까 두려워.
나는 절대 죽지 않을게. 나는 힘내서, 열심히 살아서 아빠한테도 오빠한테도 자랑스러운 사람이 될게.
엄마 자주 찾아가지 못해서 미안해.
안녕!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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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기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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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행복소울지기)
20250615121046
안녕하십니까?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활동가 행복소울지기입니다. 따님이 엄마에게 보내는 메시지에 제 딸이 저에게 보내는 메시지라 생각하고 읽으니 눈물이 나의 볼에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나를 발견합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버린 자의적인 죽음으로 떠난 이는 서스럼없이 진행을 하였겠지만, 결과를 통보받고, 그 허탈감에 빠져버린 가족의 모습이 현실감있게 느껴져 황당하다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습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잘 버터내고 있는 강아지님 너무나 대견스럽습니다. 엄마의 자연스러운 행동이 가족들에게 너무나 큰 충격을 안겨주고 간 사실을 엄마는
모를 것입니다. 그때 당시에는 그것이 최선책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제는 먼 여행을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는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내 자리를 찾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최선책일 것입니다. 살아가는 이유가 뭘까?라고 저 또한 자살유족자로서 생각해 봤습니다. 일단은 가족은 나의 객체이며, 주체는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누구는 누구나 죽는다는 숙명을 받아들이는 기본적인 것에만 명심하면 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죽은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슬픈 것은 사망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곁에 항상 있던 사람을 영원히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대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떠난 이에 대해서는 그리워만 하십시다. 나와의 인연의 숙명은 여기까지일 것을 인정하고, 나의 길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고인에 대한 예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감히 해 봅니다.
그래서 저 또한 살아있는 현재 나의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순
[전체 내용은 글쓴이에게만 보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활동가 행복소울지기입니다. 따님이 엄마에게 보내는 메시지에 제 딸이 저에게 보내는 메시지라 생각하고 읽으니 눈물이 나의 볼에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나를 발견합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버린 자의적인 죽음으로 떠난 이는 서스럼없이 진행을 하였겠지만, 결과를 통보받고, 그 허탈감에 빠져버린 가족의 모습이 현실감있게 느껴져 황당하다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습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잘 버터내고 있는 강아지님 너무나 대견스럽습니다. 엄마의 자연스러운 행동이 가족들에게 너무나 큰 충격을 안겨주고 간 사실을 엄마는
모를 것입니다. 그때 당시에는 그것이 최선책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제는 먼 여행을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는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내 자리를 찾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최선책일 것입니다. 살아가는 이유가 뭘까?라고 저 또한 자살유족자로서 생각해 봤습니다. 일단은 가족은 나의 객체이며, 주체는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누구는 누구나 죽는다는 숙명을 받아들이는 기본적인 것에만 명심하면 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죽은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슬픈 것은 사망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곁에 항상 있던 사람을 영원히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대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떠난 이에 대해서는 그리워만 하십시다. 나와의 인연의 숙명은 여기까지일 것을 인정하고, 나의 길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고인에 대한 예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감히 해 봅니다.
그래서 저 또한 살아있는 현재 나의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 제가 할 수 있는 생활에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강아지님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헤쳐나가면서 항상 강아지님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어제도 잘해 왔고, 오늘도 잘하고 있고, 내일도 잘 할 것이라 믿어의심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활 잘하시다가도 보고싶은 어머니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싶으시면
저희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얘기함을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항상 희망을 잊지않는 강아지님을 위해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얘기해요. 기억해요. 함께해요
살고 있는 거주지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정신건강전문가와 1:1 상담 가능합니다.
위치와 정보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홈페이지(https://www.kfsp.or.kr) 자살예방 기관검색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래의 정보는 즉각적인 전화 상담이 필요할 때, 도움 받으실 수 있어 안내드립니다.
-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바다
만 3살때 떠난 엄마에게
엄마에게 편지쓰는건 아마 처음인것 같애
엄마는 만 3살에 나를 떠났고 난 엄마를 사진과 음성녹음으로밖에 모르거든
엄마에 대해 아는건 다 아빠와 언니한테 들은 이야기 뿐이야
엄마 장례식때 엄마 갔어? 를 연발해서 어른들을 안타깝게 했던 나
친구집에 놀러가서 친구 엄마를 붙들고 우리 엄마 죽었다며, 나는 기억에 없는데 친구로부터 전해들은 나
들은 이야기로 아는 엄마를 닮기 위해 여러모로 엄마를 따라해 보던 나
그럼에도 자살은 남의 이야기 같았는데
언니까지 그렇게 나를 떠나니까 남의 일 같지 않더라
난 그렇게 죽고 싶지 않더라
여러 좋은 기관에서 만난 좋은 분들 덕분에 난 건강하게 오늘 51살의 생일을 맞이했고 그 누구보다도 건강하게 애도의 여정을 보내고 있어
외국에선 어린이 유족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던데 우리나라엔 그런게 없고 언니가 죽어서 상담을 시작했을때 조차 엄마의 죽음은 오래된거니까 하며 다뤄주지를 않더라고
그래서 올해부터 자작에서 자녀모임도 참석한다
두번 참석했고 엄마의 흔적들을 찾아 나서는 여행이 시작되었어
집안에 자살자가 두명 이상인 집 수두룩 빽빽이더라구
나만 최악의 상활에서 극적으로 살고 있는게 아니더라고
그런 집안에서도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의미있게 삶을 살다 갈 수 있다는걸 내가 보여주려고
자살유족 케어에 한 획을 긋는 동료지원 활동가이자 자살유족 애도상담 전문가가 될거야
내 경험이 같은 경험을 한 이들에게 도움되고 이런 경험 없는 이들과 사회에 도움이 된다면 내 이야기를 얼마든지 할거야
엄마의 죽음에 대해 다뤄야할 수많은 이야기들
자조모임에서, 상담에서 잘 다뤄볼게
토닥토닥
공감해요
함계울어요
응원해요
추모해요
보고싶어요
사랑해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기억해요
함께해요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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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별바라기)
20250216211515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활동가입니다.
바다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1년 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그 동안의 소식이 궁금했었는데 얘기함에 바다님의 소식을 전해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계신다고 하셨었는데 흐뭇한 소식, 기쁜 소식을 전해 주심에 또한 감사를 드립니다.
어린나이에 엄마를 잃고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셨을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엄마의 사랑과 애정이 가장 많이 필요한 시기에 엄마를 떠나 보내셔서 엄마의 사랑이 많이 그리우셨을 것입니다. 사진과 음성녹음으로 들었던 엄마에 대한 자취를 찾고 싶고 닮고 싶어 하는 바다님의 마음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남겨주신 글을 읽으며 이제는 5년 전의 일이 되어버린, 그 때의 상황이 문득 소환되었습니다. 천진난만하게 장례식장에서 놀던 제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죽음이라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이제는 아빠를 볼 수도 없다는 것을 알지도 못한 채 장례식장을 돌아다니던 아이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아이에게 아빠의 부재를 어떻게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많이 고민이 되었는데 입관할 때 아빠는 천국갔어 라고 말을 해준 이후로 아빠라는 단어조차 꺼내지 않았고 아빠를 찾지도 않았습니다.
바다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아직 우리나라에는 아이들에 대한 애도과정에 대한 프로그램이 없는 편이라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준비되지 못한 이별에 아이들에게는 쉬쉬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저희 아이도 죽음에 대한 인식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마음속에 준비되지 못한 이별에 대한
[전체 내용은 글쓴이에게만 보입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활동가입니다.
바다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1년 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그 동안의 소식이 궁금했었는데 얘기함에 바다님의 소식을 전해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계신다고 하셨었는데 흐뭇한 소식, 기쁜 소식을 전해 주심에 또한 감사를 드립니다.
어린나이에 엄마를 잃고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셨을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엄마의 사랑과 애정이 가장 많이 필요한 시기에 엄마를 떠나 보내셔서 엄마의 사랑이 많이 그리우셨을 것입니다. 사진과 음성녹음으로 들었던 엄마에 대한 자취를 찾고 싶고 닮고 싶어 하는 바다님의 마음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남겨주신 글을 읽으며 이제는 5년 전의 일이 되어버린, 그 때의 상황이 문득 소환되었습니다. 천진난만하게 장례식장에서 놀던 제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죽음이라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이제는 아빠를 볼 수도 없다는 것을 알지도 못한 채 장례식장을 돌아다니던 아이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아이에게 아빠의 부재를 어떻게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많이 고민이 되었는데 입관할 때 아빠는 천국갔어 라고 말을 해준 이후로 아빠라는 단어조차 꺼내지 않았고 아빠를 찾지도 않았습니다.
바다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아직 우리나라에는 아이들에 대한 애도과정에 대한 프로그램이 없는 편이라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준비되지 못한 이별에 아이들에게는 쉬쉬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저희 아이도 죽음에 대한 인식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마음속에 준비되지 못한 이별에 대한 슬픈 마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 앞 에서는 절대로 아빠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았던 아이입니다.
제 아이가 돌봄 이모에게, 아빠의 얼굴도 만져보고 싶고 아빠의 손도 잡아보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을 돌봄 이모에게서 들었습니다.
엄마를 생각하느라 일부러 말을 하지 않고 있구나 엄마가 슬퍼할까봐 자신의 슬픔은 숨기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생 돌봄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의 마음에도 어쩌면, 애도의 과정이 필요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다님께서 남겨주신 글을 읽으며 김세연 작가님이 생각났습니다. 김세연 작가는 엄마를 먼저 떠나보낸 ‘세 번째 이별의식’의 저자이며 우리와 같은 경험을 한 유족입니다. 엄마와 고등학교 때 이별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독일로 떠납니다. 10여 년 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글로 남기면서 그 동안에 하지 못했던 애도과정을 밟게 됩니다.
얼마 전 지인의 부모님이 20여일의 간격을 두고 돌아가셨습니다. 지인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부모가 없는 하늘 아래 그 마음이 어떠할지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부모가 내 곁에서 오랫동안 머물러 계시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힘이 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엄마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엄마라는 존재는 단어 그 자체만으로도 눈물이 나고 마음이 뭉클해지는 힘을 가졌습니다.
엄마에 대한 기억이 사진과 음성과 들은 이야기로만 이뤄졌지만 어쩌면 바다님의 엄마는 바다님이 살아가는데 있어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응원해주고 버틸 수 있는 힘을 엄마가 주고 계신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자살유족케어에 한 획을 긋고 자살유족 애도 상담 전문가가 되실 바다님!
너무 멋진 바다님의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흐뭇해집니다. 그리고 무척이나 기대가 됩니다.
앞으로의 동료지원활동가의 활동도 옆에서 응원하겠습니다.
건강도 잘 챙기면서 사회복지 공부 마무리도 잘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얘기해요 기억해요 함께해요.
살고 있는 거주지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정신건강전문가와 1:1 상담 가능합니다.
위치와 정보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홈페이지(https://www.kfsp.or.kr) 자살예방 기관검색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p.s. 아래의 정보는 즉각적인 전화 상담이 필요할 때, 도움 받으실 수 있어 안내드립니다.
-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활동가 별바라기 드림
오늘
엄마, 너무 보고 싶어
엄마가 떠난게 2024년 2월 29일 난 가끔 그렇게 생각해 ' 이 엄마가 자기 생각도 하지 말고 지내라고 윤달에 가버렸구나 ' 그날 엉엉 울면서 힘들어 하는 엄마 곁에 마지막까지 있어준게 나였는데 동생이랑 심하게 싸우고 서러워서 울고 그런 못난 동생 혼내지도 않는 아빠가 밉다며 울면서 얘기 했는데 그럼 내가 있잖아, 있었잖아 그날도 눈물, 콧물 닦아주며 있었는데 너도 똑같은 성씨라며 다 밉다고 들어가래서 들어갔더니 연약해서 찬물에 손만 닿아도 핏줄이 터져서 아파하는 사람이 왜 그 추운 화장실에 혼자 있던거야 난 아직도 엄마, 거실 화장실에 못 들어가겠더라 몇번 시도했거든 ? 근데 눈물이 나고 온몸이 떨리고 토할꺼 같더라 난 수건 걸이가 미치게 싫어 가끔 안방에 있는 같은 수건 걸이를 볼때 주체할 수 없이 슬픈 날엔 손에 멍이 들게 그 수건 걸이를 때리곤 했어, 바보 같지 어차피 내 손만 아플텐데
12년 내내 배우던 CPR, 엄마한테 쓸 줄이야 그럴 줄 알았으면 더 열심히 배울껄 뼈 밖에 없는 우리 엄마 몸을 보니 그냥 지금 생각하면 더 아팠을꺼 같다 그렇게 응급실로 가서 내가 4시간을 기도를 했는데 신은 없어 엄마 말대로 다 소용없더라
장례식장에 하나둘씩 오는 우리 이모들, 삼촌 보면 미안해서 죽고 싶더라 다 나 때문인거 같아서 또 그땐 쓰러졌다고 거짓말까지 쳤거든 나중에는 내 가방에 꼬깃 숨겨둔 사망진단서를 기어이 찾아내고 다같이 울었다고 하더라 난 몰랐어 그래도 이모, 삼촌은 내 걱정만해 아직도
상복을 입은 내 모습을 볼때마다 아 내가 왜 이걸 ... 엄마 유골함을 쳐다보면 아 내가 왜 이걸 ... 아빠와 법무사 사무실에 가고 동사무소에 몇십번씩 가면서도 아 내가 왜 이걸 ... 그냥 싫었어 모든게 나도 살기 싫었어 그래서 처음으로 자해도 했어 손톱으로 피가 날 정도로 살을 파니까 되게 뜨겁고 아프다 ? 그럼 시원해져 어느 순간 근데 그것도 잠시더라 요즘은 내가 보컬 레슨 강사도 하고 무대도 서다 보니 상처를 못내서 흉터를 보면 내 자신이 불쌍해 엄마
엄마 나 남들이 보기엔 되게 야무지게 살고 있다 ? 휴학했지만 강사도 하고 나 엄마랑 산책하던 곳에서 대회가 열렸는데 거기서 은상도 탔어 ! 그리고 알바도 2개, 3개씩 하면서 통장에 돈도 엄청 많고 처음으로 입시 밖에 모르던 내가 취미도 가져보고 경험도 해보고 집안 사정 때문에 못했던거 내가 내 돈 벌면서 조금씩 해보고 있어 근데 왜 ... 해도 뭔가 빈거 같은거야 근데 그 이유가 항상 엄마더라 아 내가 이거 내 돈 주고 샀다고 하면 '' 야 기특하다 엄마는 목걸이 ~ '' 할텐데 이 나이에 헬로키티 좋아하게 됐다고 하면 욕하면서 미쳤다고 할텐데 왜 자꾸 왜 자꾸자꾸 ... 나타나 ... 남들이 보기엔 야무지게 살고 있지만 우울증약 없으면 불안하고 불면증약 없으면 잠도 못자 입맛도 없는데 약만 먹으면 폭식증이 밀려와서 아침에 일어나면 다 토하고 그런다고 살이 빠지지도 않더라 붓기만 해 빈혈만 심해지고 일을 해야 엄마 생각이 안나서 강박증 처럼 미친듯이 알바와 일만 찾아보고 난 누굴까 ... ? 사회인인 나, 엄마를 잃은 나 두가지가 너무 상반돼
엄마, 엄마 목소리가 잘 기억이 안나 새벽에 유튜브 틀고 임영웅만 보던 엄마가 보고 싶어 미치겠어 엄마 보고 싶어 나 고작 21살인데 이제 10개월이 되어가는데 앞으로 엄마 없는 날이 더 많아질 걸 생각하니 나도 살고 싶지 않은데 ... 저번에 응급실 실려갔을때 울던 할머니, 아빠를 생각하면 난 못 죽어 ... 엄마는 왜 그랬어 ... 나 있잖아 ...
엄마는 나 없어도 행복해 ? 편할까 ? 난 매일 슬프고 우울한데 그렇다고 엄마가 슬프고 우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다가 가끔 아주 가아끔만 나한테 미안해 해줘 하루에 한 1분만 그러다가 또 잊고 행복하게 살아 내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처럼 다음생에는 다 반대로 태어나 엄마
엄마, 너무 보고 싶어
토닥토닥
공감해요
함계울어요
응원해요
추모해요
보고싶어요
사랑해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기억해요
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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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계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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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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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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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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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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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행복소울지기)
20241127090943
안녕하십니까?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활동가 행복소울지기입니다. 엄마의 마지막을 함께했다면 그 슬픔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날 것이라 감히 얘기조차 못할 정도라는 것을 익히 저두 경험상 알고 있습니다. 저는 시동생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사체확인을 저의 신랑이 했습니다. 겉으로는 강한 척 모든
섬세한 것 까지 전부 챙기고 싶어하고, 어떠한 상황에 접하게 되면 처음부터 끝까지 시뮤레이션을 돌리고, 경험을 하는 예민한 신랑이 그 사체확인을 했으니, 그
뒤를 감당해야 하는 저는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님이 현재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를 감히 느껴봅니다. 엄마라는 존재는 항상
자녀에게는 의문점과 물음표 그리고 느낌표로 애증의 관계가 될 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자녀입장에서 힘들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엄마이고,
짜증이 날 때 화풀이를 하고 싶은 대상도 엄마이고, 엄마가 맛있는 것 해 놓으면 맛있게 먹으면서 행복감을 표현해 주는 대상도 엄마입니다. 그러면서 엄마가 나에게는 영원한 등받이가 되어 있을 줄 착각도 한답니다. 그런데 그건 착각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보이고 있는 곳에서 나를 보호해 주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에게 불을 밝혀주는 존재라고 전 항상 생각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의 엄마는 2013년 3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항상 본인에게 최선을 다하면서 자식들을 위해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던 나의 엄마는 치매판정을 받고 몇 년을 고생하시다가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엄청나게 슬펐습니다. 그런데 저는 엄마에게 해 줄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전체 내용은 글쓴이에게만 보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활동가 행복소울지기입니다. 엄마의 마지막을 함께했다면 그 슬픔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날 것이라 감히 얘기조차 못할 정도라는 것을 익히 저두 경험상 알고 있습니다. 저는 시동생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사체확인을 저의 신랑이 했습니다. 겉으로는 강한 척 모든
섬세한 것 까지 전부 챙기고 싶어하고, 어떠한 상황에 접하게 되면 처음부터 끝까지 시뮤레이션을 돌리고, 경험을 하는 예민한 신랑이 그 사체확인을 했으니, 그
뒤를 감당해야 하는 저는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님이 현재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를 감히 느껴봅니다. 엄마라는 존재는 항상
자녀에게는 의문점과 물음표 그리고 느낌표로 애증의 관계가 될 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자녀입장에서 힘들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엄마이고,
짜증이 날 때 화풀이를 하고 싶은 대상도 엄마이고, 엄마가 맛있는 것 해 놓으면 맛있게 먹으면서 행복감을 표현해 주는 대상도 엄마입니다. 그러면서 엄마가 나에게는 영원한 등받이가 되어 있을 줄 착각도 한답니다. 그런데 그건 착각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보이고 있는 곳에서 나를 보호해 주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에게 불을 밝혀주는 존재라고 전 항상 생각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의 엄마는 2013년 3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항상 본인에게 최선을 다하면서 자식들을 위해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던 나의 엄마는 치매판정을 받고 몇 년을 고생하시다가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엄청나게 슬펐습니다. 그런데 저는 엄마에게 해 줄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우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장례절차에 따라 값비싼 수의 및 값비싼 오동나무, 그리고, 납골당에 모실 비싼 단지, 그것이 제가 엄마한테 해 줄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그러면서 비록 곁에는 있지 않지만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보호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도 이렇게 버티고 있답니다.
그러니 오늘님도 보이지않는 곳에서 엄마는 항상 오늘님을 지켜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님의 오늘을 믿고, 하루에 최선을 다하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동생과의 새로운 하루에 동행하셨으면 합니다. 나의 슬픔이 큰 만큼 다른 가족의 더 큰 슬픔은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니, 내 슬픔이 큰 만큼 다른 가족의 슬픔도 감당하고 있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나'가 되도록 노력하십시다. 왜냐하면 내가 오늘의 일상을 보내는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얘기해요. 기억해요. 함께해요
살고 있는 거주지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정신건강전문가와 1:1 상담 가능합니다.
위치와 정보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홈페이지(https://www.kfsp.or.kr) 자살예방 기관검색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래의 정보는 즉각적인 전화 상담이 필요할 때, 도움 받으실 수 있어 안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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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보고싶은 딸
사랑스런 딸이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엄마가 돌아간지 2년이 넘었어. 나는 아직도 엄마가 나한테 해준 고마운 것들이 자꾸 생각이 나고 엄마는 정말 선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 부족한 딸을 챙기고 다니느라 얼마나 바쁘고 힘들었을까 싶어.
엄마는 나를 위해서 헌신했던거 생각하면 눈물이 나. 내가 초등학교때부터 반장하면 엄마가 학교에서 활동해서 나 케어해주고 그랬던거 어릴때부터 생각하면 너무 미안해. 귀한 늦둥이 딸이라서 더 애착이 갔겠지. 나처럼 정말 예뻐해주는 엄마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 고마웠어. 내가 고등학교때는 공부보다 외적인 것에 신경을 썼을터라 엄마는 속타고 애타면서 내가 공부하길 기다렸었지. 갈등도 있었고. 그래도 겨우 공부해서 대학 갔지만 이런 못난 딸이라 성장하면 성장할 수록 엄마에게 효도해야 되는데 그러질 못해서 정말 미안하네. 성인이 되어서는 바로 엄마가 점점 정신적으로 아프고 그랬을때 한편으로는 답답하고 짜증도 났던 것 같아. 진짜 못난 딸이지. 엄마, 하늘 나라에서는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 다음 생에는 나같은 딸 만나지 않았음 좋겠다 ㅎㅎ 그리고 나는 엄마가 너무 보고싶어서 이런 생각도 해. 할머니 돼서 엄마를 꼭 다시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다시 객관적으로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까 나 참 엄마한테 과연 좋은 딸이였을까 싶다. 내가 엄마라면 딸이 점점 말도 안듣고 미워졌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치만 나한테는 엄마가 너무 소중하고 하나밖에 없는 걸.
엄마가 살아있을 때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서 편지 많이 쓸걸. 오글거리는거 싫어해서 쓰지 못했어.
엄마 하늘나라에서 잘 살아줘. 내가 나중에 아주 늙어서 가게 되면 우리 꼭 다시 만나자. 그때까지 하늘 나라에서 잘 지켜봐줘. 나 열심히 살게. 고마웠고 사랑해 엄마.
토닥토닥
공감해요
함계울어요
응원해요
추모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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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기억해요
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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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계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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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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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
x 2
미안해요
x 1
고마워요
x 0
기억해요
x 4
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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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푸리야)
20241015155642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 활동가 ‘푸리야’입니다.
며칠 전부터 한강의 노벨상수상으로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당연히 내 일처럼 기뻐 축하하면서도 제 가슴 한 구석의 구멍이 워낙 크다 보니 휭하니 바람 소리만 크게 들립니다.
‘엄마가 보고 싶은 딸’ 님의 글. 몇 번을 다시 읽고 읽었습니다. 시골의 가을날 오후처럼 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싶었고 편안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이상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압니다. 행간에 숨어있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간절하게 보고 싶어하는 마음을요. 그러나 고마웠습니다.
오히려 어느새 엄마의 빈 자리를 2년 넘게 지나오면서 엄마가 나한테 해준 고마운 것들이 자꾸 생각이 나고 엄마가 정말 선한 사람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됐다는 구절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엄마가 보고 싶은 딸’ 님은 결코 부족한 딸도 아니었고 엄마가 너무 소중하고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래서 엄마는 딸을 보면서 많이 따뜻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우리는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가슴이 참 많이 아픕니다. 저도 스물일곱의 아들이 떠난 지 어느덧 8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불쑥불쑥 마음이 답답해지고 미안하고 못 해준 일만 생각납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이 미안함이 옅어지지도 않습니다. 8년이든 10년이든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지금도 어제까지도 아들이 제 곁에 있었던 것만 같고 아들의 부재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아들의 기일이 10월이기에 10월이 되면, 아니 어느 날
[전체 내용은 글쓴이에게만 보입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동료지원 활동가 ‘푸리야’입니다.
며칠 전부터 한강의 노벨상수상으로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당연히 내 일처럼 기뻐 축하하면서도 제 가슴 한 구석의 구멍이 워낙 크다 보니 휭하니 바람 소리만 크게 들립니다.
‘엄마가 보고 싶은 딸’ 님의 글. 몇 번을 다시 읽고 읽었습니다. 시골의 가을날 오후처럼 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싶었고 편안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이상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압니다. 행간에 숨어있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간절하게 보고 싶어하는 마음을요. 그러나 고마웠습니다.
오히려 어느새 엄마의 빈 자리를 2년 넘게 지나오면서 엄마가 나한테 해준 고마운 것들이 자꾸 생각이 나고 엄마가 정말 선한 사람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됐다는 구절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엄마가 보고 싶은 딸’ 님은 결코 부족한 딸도 아니었고 엄마가 너무 소중하고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래서 엄마는 딸을 보면서 많이 따뜻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우리는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가슴이 참 많이 아픕니다. 저도 스물일곱의 아들이 떠난 지 어느덧 8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불쑥불쑥 마음이 답답해지고 미안하고 못 해준 일만 생각납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이 미안함이 옅어지지도 않습니다. 8년이든 10년이든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지금도 어제까지도 아들이 제 곁에 있었던 것만 같고 아들의 부재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아들의 기일이 10월이기에 10월이 되면, 아니 어느 날 문득 가을이 느껴지면 몸이 먼저 기억하고 일상이 슬프고 힘들어집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아란 하늘을 봐도, 눈부신 햇살을 받아 가로수의 단풍이 아무리 화려해도 아름다움을 느끼기 전에 울컥합니다. 공허해집니다. 같이 느끼고 나누지 못해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래서 이렇게 얘기함에 엄마와의 시간을 다시 되새기면서 엄마에게 보고싶다고 말하고 엄마한테 과연 좋은 딸이였을까 질문하며 엄마를 꼭 다시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엄마가 보고싶은 딸’ 님의 용기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엄마에게 잘 전달됐을 것입니다. 씩씩하게 잘 살아가려고 애쓰는 진심을 따듯하게 안아주고 싶습니다.
엄마가 살아있을 때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서 편지 많이 쓸걸. 오글거리는 거 싫어해서 쓰지 못했던 ‘엄마가 보고싶은 딸’ 님. 지금처럼 이렇게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사랑의 말을 다 찾아 쓰면 되지 않을까요? 엄마와의 추억을 정리하며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매일매일 쓰면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할 때 엄마는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곁에 같이 있는 것이니까요.
제가 아는 작가 소재웅님은 자살하신 엄마의 기일을 맞이해 매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책을 내며 애도의 시간을 보냅니다. 올해도 네 번째 책, 시집 <엄마의 봄>을 출간했습니다.
저는 그 책들을 따라 읽어가며 뜻밖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천국에서 비로소 완벽한 봄을 맞이했을 봄처럼 빛나는 엄마를 그려보는 작가의 애도 과정을 지켜보면서 아들을 붙잡고 마냥 울고만 있는 제 자신이, 미안해 미안해하며 매일 죄책감에 젖어있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엄마의 마지막 봄은 / 쓸쓸했다. / 그 봄 후 / 3년 즈음 흘러 / 생명이 감지된다 / 조금씩, 조금씩 ’ 시 구절처럼 저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힘을 얻었습니다. 저 자신을 토닥토닥하며 일어서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엄마가 보고 싶은 딸’ 님의 “엄마, 하늘나라에서 잘 살아줘. 하늘나라에서 잘 지켜봐 줘. 나 열심히 살게. 고마웠고 사랑해 엄마.”처럼 저도 아들에게 새로운 생명의 봄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미안하다는 말 대신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최근에 읽은 책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공지영>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고통이 오면 우리는 이 고통이 내게 원하는 바를 묻고, 반드시 변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은 그동안 우리가 가졌던 틀이 이제 작아지고 맞지 않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다시 외로워지더라도 우리는 택해야 한다. 그 고독을. 그것이 참된 것이라면...”
이 세상의 어떤 고통도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과 비교할 수는 없지요. 죽음은 원상회복이 안 되는 거니까요.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문장에 저를 대입시켜보았습니다. ‘엄마가 보고 싶은 딸’ 님처럼 저도 선택해야겠지요. 그리고 아들이 나에게 하고 싶은 말, 엄마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물어보려고 합니다. ‘엄마가 보고 싶은 딸’ 님에게도 제가 또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엄마를 떠나서 살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보고 싶은 딸’ 님의 하루하루가 생명으로 가득한 봄날이 되길 간절하게 바랍니다. 충분히 해나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함께 잘 살아가요.
오늘도 얘기해요. 기억해요. 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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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 후면 첫번째 기일을 맞이하는데요
그 날이 안왔으면 합니다
그 일이 있고 몇달은 엄마 생각만 했었는데 이제는 엄마랑 관련된 생각이 들거나 이야기가 들리면 피하기 바빠요
납골당에 가는것도 너무 벅차서 가기 싫습니다
기일이 돌아오면 또 다시 힘들어질까봐 그 날이 안왔으면 싶습니다
아직은 원망감이 너무 커서 애써 모른척하려는건가 싶은데
이러다가 나중에 일상생활하기도 힘들정도로 후폭풍이 찾아올까봐 무서워요
시간이 지나면 이 감정이 옅어지고 자연스레 해결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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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별봄소리)
20240927195504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얘기함 동료지원 활동가 별봄소리입니다. .님께서 힘드신 중에도 얘기함 이야기 공간에 글을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곧 첫 기일이 되니 그날을 앞두고 마음이 많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우신 듯합니다. 감당하기 어렵지는 않을까, 지금보다 힘들어지는건 아닐까 두렵기도 하고, 원망이 되기도 하고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으실 듯합니다. 고인과 연관된 것들에서 도망치고 싶고 피하고 싶은 마음... 이 모든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애도과정의 당연한 감정이라 봅니다.
고인과 관련된 이야기나 일들을 애써 모른척하셔도 괜찮고 납골당을 가지 않으셔도 괜찮은 거라 생각합니다. 납골당을 가든 안가든 고인은 자신의 마음에 있는거니, 지금은 .님의 마음과 감정이 더 중요하고 잘 돌봐야하는 시간이라 봅니다. 혹시 원망도 하면 안되고 피하면 안된다는 마음이 자신을 더 힘들게 하는건 아니신지요? 아마도 .님은 따뜻한 마음을 갖고 계셔서 고인에 대해 원망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으신건 아닐까,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피하는 것이 고인을 모르는 척하는 건 아닐까 싶어 한편으로는 고인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있으신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보다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우선이어서 고인에 대해 원망하는 거조차 조심스러우신게 아닐까 싶습니다. 크나큰 일을 겪은 우리 유가족들이 이렇게 숨을 쉬고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만도 너무 대견하고, 잘하고 있다고 격려받아 마땅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님의 일상생활을 잘 해나가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합니다. 고인에 대해 잠시 원망도 좀 하고, 납골당에 가기 싫으면 가지 않고, 고인과 관
[전체 내용은 글쓴이에게만 보입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얘기함 동료지원 활동가 별봄소리입니다. .님께서 힘드신 중에도 얘기함 이야기 공간에 글을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곧 첫 기일이 되니 그날을 앞두고 마음이 많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우신 듯합니다. 감당하기 어렵지는 않을까, 지금보다 힘들어지는건 아닐까 두렵기도 하고, 원망이 되기도 하고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으실 듯합니다. 고인과 연관된 것들에서 도망치고 싶고 피하고 싶은 마음... 이 모든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애도과정의 당연한 감정이라 봅니다.
고인과 관련된 이야기나 일들을 애써 모른척하셔도 괜찮고 납골당을 가지 않으셔도 괜찮은 거라 생각합니다. 납골당을 가든 안가든 고인은 자신의 마음에 있는거니, 지금은 .님의 마음과 감정이 더 중요하고 잘 돌봐야하는 시간이라 봅니다. 혹시 원망도 하면 안되고 피하면 안된다는 마음이 자신을 더 힘들게 하는건 아니신지요? 아마도 .님은 따뜻한 마음을 갖고 계셔서 고인에 대해 원망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으신건 아닐까,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피하는 것이 고인을 모르는 척하는 건 아닐까 싶어 한편으로는 고인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있으신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보다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우선이어서 고인에 대해 원망하는 거조차 조심스러우신게 아닐까 싶습니다. 크나큰 일을 겪은 우리 유가족들이 이렇게 숨을 쉬고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만도 너무 대견하고, 잘하고 있다고 격려받아 마땅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님의 일상생활을 잘 해나가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합니다. 고인에 대해 잠시 원망도 좀 하고, 납골당에 가기 싫으면 가지 않고, 고인과 관련된 일이나 이야기를 피하고 싶으면 최대한 피해보는건 어떨까요?
이전에 고인과의 관계가 좋았으면 좋은 대로 별로 좋지 않았다면 좋지 않은대로 여러 감정에 마음이 힘드신 것은 당연합니다. 고인을 떠나보내고 한두달과 일년, 첫기일이 아무래도 감정적으로 더 혼란스러운듯합니다. 고인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오래된 만큼 하루아침에 감정이 정리되기 어렵겠지만, 차츰차츰 천천히 고인과의 감정을 재정립하면서 자신의 마음에 고인의 자리를 마련하시게 될꺼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슬프고 마음이 아파 잠시 힘든때도 있으시겠지만 분명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지금처럼 굳건히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내실겁니다.
저는 이제는 아버지가 생각나면, ‘아버지! 왜 그러셨어요~ 아버지가 잘못하셨죠? 그런데, 아버지 덕분에 더 열심히 살려고 이렇게 애쓰고 있어요. 아버지도 하늘나라에서 잘 계시죠? 제가 잘살고 있는거 지켜보시고 마음으로 기도해주세요’ 이렇게 혼잣말을 하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아버지 “때문에” 내 인생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원망했고 분노와 배신감으로 잠을 이룰 수 없기도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아버지 “덕분에” 제 삶과 이웃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지고 깊어졌습니다. 지금 함께 하는 사람과 가족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고,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더 분명해졌습니다. 학창시절에 하지 않던 공부도 열심히 하고, 제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게 무엇인지 명확해졌습니다.
.님의 ‘해결이 될까요...?’ 하는 물음이 언젠가는 ‘해결이 되었습니다.’ 하는 순간으로, 그 시간이 곧 오리라 믿습니다. 오늘하루도 열심히 고군분투하며 보내셨을 .님을 저희 활동가 모두 마음모아 응원합니다. 오늘도 애많이 쓰셨습니다.
.님께 이야기 공간이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언제든지 고민되거나 더 이야기하고 싶으시다면 추가로 댓글을 남겨주셔도 됩니다.
“오늘도 얘기해요. 기억해요. 함께해요.” 동료지원 활동가 별봄소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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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준
사랑하는 엄마
엄마
2024년 7월 1일 12시에 엄마가 나쁜 선택을 한 날 나는 이직할 직장의 면접 준비를 하고 있었어...
엄마가 유서를 작성한 내용도 다 나에게 말하는 편지같더라... 나는 17살 이후부터 엄마한테 단 한번도 배신을 한 적이 없는데, 엄마는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큰 배신감을 안겨줄 수 있는 지 너무 원망스러워. 나한테 말도없이 이렇게 떠나버렸다는 게 서러워. 그리고 난 엄마 얼굴 못본 지 2주일이나 됐는데 마지막 모습이라도 보여주지 그랬어... 본가 갈때마다 엄마가 제일 먼저 반겨줬는데., 이제 나를 반겨줄 사람이 없어서 너무 힘들어...
그리고 아들이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하는 거 잘 알면서 내 손으로 엄마 살릴 기회도 주지않고 나는 다른 사람 목숨 살리기 위해서 열심히 일했는데, 엄마는 나한테 바로 떠나버린 게 나는 엄마가 너무 밉고 원망스러워.
그러니까 엄마 하늘에서는 꼭 행복하게 있어야 돼. 위에서 웃으면서 나 지켜봐줘. 안그러면 내가 늙어서 엄마한테 찾아갈 때 크게 화낼거야.
이번주 토욜일에 엄마가 좋아하는 내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엄마 찾아가기로 했어. 엄마 내 고등학교 친구들을 많이 좋아했잖아, 내 친구들도 그걸 알아서 엄마 보러 같이 가자고 하네. 엄마도 웃으면서 반갑게 맞아줘. 오늘 엄마 있는 곳에 내가 엄마 좋아하는 이쁜 연보라 꽃 남겨뒀는데 이뻐할 지 모르겠네. 엄마 나도 엄마 몸에서 나온 일부니깐 엄마 항상 내 가슴 속에 품고 평생 살아갈 거야 엄마도 더 이상 멀어지지 말고 내 가슴 속에서 살아줘. 그리고 내가 느끼는 감정 같이 느껴줬으면 좋겠다. 엄마가 엄마 용서 하지 말라고 그랬지? ? 솔직히 지금 당장은 용서가 안돼. 내가 좀 더 자라고 성장하면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나보고 싶으면 꿈속에 언제든 찾아와줘 매일이라도 좋아.. 엄마 너무 보고싶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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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별봄소리)
20240729060335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얘기함 동료지원 활동가 별봄소리입니다. 서영준님께서 크나큰 일을 겪으신지 채 한달도 안되어 황망하고 경황이 없으실텐데 힘드신 중에도 얘기함 이야기 공간에 글을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배신감도 들고 원망도 되고 슬프고 서럽고 밉고... 이렇게 여러감정이 드시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애도 과정입니다.
제대로 못 뵙고 어머님을 떠나보내고, 간호사로서 마지막 살릴 기회조자 주지 않으셔서 무력감도 느끼셨을텐데, 이런 혼란스러움 중에도 어머님께서 웃으면서 행복하게 계시기를 바라는 서영준님의 따뜻한 마음도 느껴집니다.
지난 주말 고등학교 친구들과 어머님을 뵙고 오셨겠네요. 이쁜 연보라 꽃을 남겨두신 서영준님의 정성어린 마음을 떠올려봅니다.
우선 서영준님의 몸과 마음을 잘 돌보셔서 회복되시고 나면 차츰차츰 서서히 어머님과 함께 했던 시간과 감정들을 재정립하시게 되고, 용서하는 마음도 드실겁니다. 천천히 어머님을 이해하셔도 괜찮습니다.
어머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배신하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비록 곁을 떠나셔서 본가를 방문해도 제일 먼저 반겨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너무 힘드시겠지만, 아드님을 사랑하신 어머님의 그 마음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하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분노가 올라 왔었습니다. 배신감이 들고 너무 화가 났었습니다. 열심히 이를 악물고 살아온 내게, 어떻게 나한테 이러실 수 있을까하고 말이지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버지로서가 아닌 가련하고 연약한 한 인간으로서 최선
[전체 내용은 글쓴이에게만 보입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얘기함 동료지원 활동가 별봄소리입니다. 서영준님께서 크나큰 일을 겪으신지 채 한달도 안되어 황망하고 경황이 없으실텐데 힘드신 중에도 얘기함 이야기 공간에 글을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배신감도 들고 원망도 되고 슬프고 서럽고 밉고... 이렇게 여러감정이 드시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애도 과정입니다.
제대로 못 뵙고 어머님을 떠나보내고, 간호사로서 마지막 살릴 기회조자 주지 않으셔서 무력감도 느끼셨을텐데, 이런 혼란스러움 중에도 어머님께서 웃으면서 행복하게 계시기를 바라는 서영준님의 따뜻한 마음도 느껴집니다.
지난 주말 고등학교 친구들과 어머님을 뵙고 오셨겠네요. 이쁜 연보라 꽃을 남겨두신 서영준님의 정성어린 마음을 떠올려봅니다.
우선 서영준님의 몸과 마음을 잘 돌보셔서 회복되시고 나면 차츰차츰 서서히 어머님과 함께 했던 시간과 감정들을 재정립하시게 되고, 용서하는 마음도 드실겁니다. 천천히 어머님을 이해하셔도 괜찮습니다.
어머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배신하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비록 곁을 떠나셔서 본가를 방문해도 제일 먼저 반겨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너무 힘드시겠지만, 아드님을 사랑하신 어머님의 그 마음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하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분노가 올라 왔었습니다. 배신감이 들고 너무 화가 났었습니다. 열심히 이를 악물고 살아온 내게, 어떻게 나한테 이러실 수 있을까하고 말이지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버지로서가 아닌 가련하고 연약한 한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해 사셨던 아버지가 어쩔수 없이 그런 선택을 하시기까지의 삶에 대해 측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아버지가 제게 잘 해주셨던 기억들과 잊고 있었던 함께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웃음짓곤 합니다. 꿈속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제가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가 살짝살짝 다녀가시면서 잘 살기를 간절하게 바라실꺼라는 믿음도 생겼습니다.
서영준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우리는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몸을 갖고 있으니 항상 가슴속에 품고 평생 살아갈 겁니다. 그리고, 이것을 동력삼아 우리의 몸과 마음이 더욱 성장할 것이고, 이로써 주변 이웃에게로 확장되는 사랑을 나누게 되는 듯합니다.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하시는 서영준님께서는 이런 사랑을 어머님과 함께 나누셨고, 또 많은 이들에게 이미 나눠주고 계신듯합니다. 환자를 케어해 주신것처럼 부디 어렵고 힘든 이 시기에 서영준님의 몸과 마음을 잘 돌보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서영준님께 이야기 공간이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언제든지 고민되거나 더 이야기하고 싶으시다면 추가로 댓글을 남겨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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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fsp.or.kr/web/helpSearch?pMENU_NO=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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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으니
우리 아빠 잘 지내?
아빠 나야 아빠가 제일 무서워하고 제일 미안해 하던 큰 딸!
아빠가 떠난 날은 눈도 제대로 녹지 않았던 추운 겨울이었는데 벌써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어
나는 아직 그 날 그대로 남아있고 싶은데 제대로 슬퍼하고 제대로 보내주지도 못한 거 같은데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흐르는지 시간이 흘러 아빠의 존재가 주변 사람들에게 점점 흐릿해져 갈까 봐
그게 나는 너무 무섭고 원망스러워
나에게 있어 우리 가족에게 있어 아빠의 지인들에게 있어서 정말 큰 사람이었는데 큰 존재였는데
그런 사람이 그런 존재가 없어 진다는 게 너무 무섭고 슬프다
아빠가 그랬잖아 부모는 자식을 앞세우면 평생 가슴에 묻고 살지만 자식은 아니라고 금방 털어내고 산다고 근데 아니더라 내가 아닐 거라고 했지?
우리는 지금도 앞으로도 잊지 못하고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아 갈 꺼야
아빠 나는 아직도 아빠를 데리러 갔던 그 날이 그 풍경이 그 날의 온도가 너무 생생해
추운 걸 유난히 싫어했던 아빠가 그렇게 추운 곳에서 아닌 척 해도 외로움을 엄청 타고 겁이 그렇게 많던 우리 아빠가 그런 방법으로 스스로 삶을 끝냈을 지 누가 알았을까
아니 알았는데 사는 게 힘들다는 핑계로 모르는 척 했던 게 맞지 않을까 가는 길이 너무 외롭고 무섭진 않았을까 아프지는 않았을까 나를 원망하지 않았을까 수없이 생각하고 수없이 후회하게 돼
떠나기 전 날 나를 보고 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데 삼킨 걸까
왜 그 날 밥 한번 먹어주지 못했을까 따뜻한 말 한마디 따뜻하게 한 번 안아 주지를 못했을까
너무 원망스럽고 너무 후회가 돼 딸밖에 없는 우리 아빠한테 살갑지 못했던 딸이어서 너무 무뚝뚝하고
잔소리만 하던 딸이어서 늘 엄마 편만 되어줬던 모진 딸이어서 너무 미안해
아빠 늘 나한테 그랬잖아 너무 자랑스럽고 크게 잔소리 하지 않아도 잘해주는 딸이라고 든든하다고
큰 딸로써 너무 잘해주고 있다고 근데 아니다?
나 진짜 지금 하나도 제대로 하고 있는 게 없어 그 자랑스러워 하던 직장 그만뒀고 매일 매일 무슨 정신으로 하루를 보내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한심하게 살아
사실 늘 힘들다고 투정 부리고 싶었고 나도 다른 딸들처럼 아빠한테 응석 부리고 싶었어
나한테 늘 미안하다고 했으면서 왜 그런 기회조차 주지 않고 떠나버린 거야?
많이 힘들었지 많이 무서웠지 우리 아빠 .. 너무 늦게 알아줘서 미안해 너무 늦게 위로해줘서 미안해
표현하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 단 한순간도 아빠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 아빠는 늘 나에게 미안해 했지만 난 늘 아빠 딸이라서 자랑스러웠어 나에게 있어서 누구보다 소중한 우리 아빠 내 아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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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별봄소리)
20240717163729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얘기함 동료지원 활동가 별봄소리입니다. 가으니님께서 힘드신 중에도 얘기함 이야기 공간에 글을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가장 큰 사람이였고 가장 큰 존재였던 아버님을 떠나보내신 가으니님의 마음이 어떠실지 누구보다 잘 이해됩니다. 저도 아버지를 떠나보냈으니까요. 앞으로도 잊지 못하고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아 갈꺼라는 가으니님의 얘기가 가슴 아프게 들려옵니다.
추운 것을 싫어하시고 외로움도 타시고 무서워하지는 않으실지 아버님에 대한 걱정과 애틋함이 전해져 옵니다. 아버님에 대해 아주 잘 아시는 것을 보니 아버님께서 따뜻한 분이셨고 따님을 많이 아끼셨던 분인 듯 합니다. 그래서 가으니님 스스로 원망과 후회가 더 크실듯합니다.
무뚝뚝하고 살갑지 못하고 잔소리만하고 엄마편을 들어도 다 받아주실거 같은 아버님이셨기에, 늘 함께 하실줄 알았던 크신 분이었기에 가으니님께서 모질게 보일 수 있는 딸일 수 있지 않았을까요? 오히려 아버님께서는 그런 따님이 너무 자랑스러우셨고 든든한 큰딸이셨고 믿고 있으셨음에 틀림없습니다.
응석도 부리고 투정도 부리고 싶었던 아버님께 이제는 미안한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만 외칠수 있는 가으니님의 호소가 마음 아프게 전해져오니 저도 눈물이 납니다. 아버님께서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던 직장도 그만두고, 매일매일 무슨 정신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한심하게 사는 것처럼 느끼고 계시다고 하셨는데, 우리 유가족들이 겪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들입니다. 가으니님의 애도 과정중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들은 당연한 것입니다. 다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님과의 추
[전체 내용은 글쓴이에게만 보입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얘기함 동료지원 활동가 별봄소리입니다. 가으니님께서 힘드신 중에도 얘기함 이야기 공간에 글을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가장 큰 사람이였고 가장 큰 존재였던 아버님을 떠나보내신 가으니님의 마음이 어떠실지 누구보다 잘 이해됩니다. 저도 아버지를 떠나보냈으니까요. 앞으로도 잊지 못하고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아 갈꺼라는 가으니님의 얘기가 가슴 아프게 들려옵니다.
추운 것을 싫어하시고 외로움도 타시고 무서워하지는 않으실지 아버님에 대한 걱정과 애틋함이 전해져 옵니다. 아버님에 대해 아주 잘 아시는 것을 보니 아버님께서 따뜻한 분이셨고 따님을 많이 아끼셨던 분인 듯 합니다. 그래서 가으니님 스스로 원망과 후회가 더 크실듯합니다.
무뚝뚝하고 살갑지 못하고 잔소리만하고 엄마편을 들어도 다 받아주실거 같은 아버님이셨기에, 늘 함께 하실줄 알았던 크신 분이었기에 가으니님께서 모질게 보일 수 있는 딸일 수 있지 않았을까요? 오히려 아버님께서는 그런 따님이 너무 자랑스러우셨고 든든한 큰딸이셨고 믿고 있으셨음에 틀림없습니다.
응석도 부리고 투정도 부리고 싶었던 아버님께 이제는 미안한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만 외칠수 있는 가으니님의 호소가 마음 아프게 전해져오니 저도 눈물이 납니다. 아버님께서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던 직장도 그만두고, 매일매일 무슨 정신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한심하게 사는 것처럼 느끼고 계시다고 하셨는데, 우리 유가족들이 겪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들입니다. 가으니님의 애도 과정중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들은 당연한 것입니다. 다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님과의 추억을 재정립할 수 있을 것이고, 새로운 자리를 가으니님 마음에 내어드리는데 조금 시간이 필요할 뿐입니다.
처음에 저도 원망과 후회로 고통스러웠는데, 차차 아버님이 나름 삶에 최선을 다해 애쓰셨고, 가족들을 배신하기 위해 선택을 하신 것도 아니며, 우리형제들에 대한 사랑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마지막까지도, 그리고 여전히 자랑스럽고 든든한 딸로 기억하고 계실꺼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분명 가으니님과 아버님사이의 신뢰가 일상 회복에 도움이 되실 것이고, 잠시 지쳐있으시겠지만 다시 일어나 가으니님의 삶을 잘 살아가게하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입니다. 아버님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차츰 확장되어 가으니님 곁에 있는 가족과 이웃을 살피는 식견이 될 것입니다. 아버님을 떠나보내신 슬픈 마음이시겠지만, 애도의 시간을 천천히 지내시면서, 건강 잘 챙기시고, 식사 잘 하시고, 숙면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작성글의 띄어쓰기가 반영이 안되어 읽으시는데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가으니님께 이야기 공간이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언제든지 고민되거나 더 이야기하고 싶으시다면 추가로 댓글을 남겨주셔도 됩니다.
“오늘도 얘기해요. 기억해요. 함께해요.” 동료지원 활동가 별봄소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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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삶이 지치고 힘이 들어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곤 해
엄마가 교통사고로 죽은 동생을 따라 자살했다는 이야길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어.
사실 너무도 어린 나이에 헤어져 사실 엄마라는 사람이 기억도 안 나
그래서 차라리 좋은 기억이라도 떠올라 진다면 더 좋았겠다 싶어.
엄마가 빼곡히 쓴 일기, 유서, 그리고 나와 같이 찍은 사진들을 고이 간직하고선 종종 꺼내보곤 하는데
나와 같이 찍었던 사진 조차도 너무나 어린 시절이라 기억이 안 나 사실 실감은 안 나는데, 외로움이 많이 느껴지네.
그래서 가끔은 궁금하기도 해, 엄마의 목소리도 궁금하고, 지금쯤 살아있었다면 어떤 말을 내게 먼저 할 지
그리고 문득 아쉽기도 해 좋은 볼거리, 맛있는 음식들을 함께 나눌 수 없다는 사실에...
한동안 나는 방황을 많이 했어. 그러다 사실 최근에도 몇 번 자살을 결심하기도 했었는데
나는 엄마의 선택만큼 그렇게 대담하지도 못하고, 참 희한하게도 약을 한 웅큼 털어먹었는데도 다음날 곱게 일어나더라고.
(뭐 그러한 사실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선생님이고, 상담 선생님께 많이 혼났지만 말야.)
아직까지는 삶에 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종종 던지곤 해
(수많은 자기계발서에서 삶에 주제를 찾으려 하지 말라고 하는데 말야.)
'나는 잘 살아왔는가?', '나는 앞으로 잘 살 수 있는가?'
아직 잘 모르겠어. 혼자 남아 잘 살아왔는지, 앞으로 잘 살 수 있는지 말야.
근데 좀 신기한 요즘이었어. 그렇게 자살 결심을 하고, 시도도 했던 그 순간
달콤한 꿈을 꾸며 누군가와 대화를 주고 받거나, 내 삶에 엄마가 드라마에서처럼 타임슬립을 했던가?
하루하루가 참 신기하고 감사한 일들이 참 많았다?
엄마가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던걸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문득 신사임당의 '수박과 들쥐'라는 작품을 가르치면서 작품에 담긴 패랭이꽃의 의미가 '청춘'이며 '오래오래 살라'는 뜻이라나 뭐라나? 그런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학생들이 동요를 불러주는데 동요 가사가 참 내가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처럼
'잘 하고 싶은데 잘 하지 못하는 내 자신'으로 뭐 공감 가면서 울게 되더라.
혹은 달콤한 꿈에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눴는데 엄마가 내게 한 잔소리인가 싶을 정도로
사소한 일에도 감사할 줄 알고, 운동 좀 하고, 영어 공부 좀 하라는 뭐 그런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에서
나쁜 소린 없더라고...(우울증이 심해서 관계망상인가 싶긴 해...ㅎ)
그래도 하루하루 다시 우울증 약도 잘 먹고, 의사선생님 말씀처럼 다시 집 앞 공원을 걸으며,
그리고 열심히 출근하고... 상담 선생님과 상담도 잘 받고... 뭐 그러고 있어.
아참, 원망은 한 적 없다고 생각했는데 (충분히 그 상황을 이해하려 했기에)
문득 홀로 남겨진 나는 어쩌라는 생각이 들어 가끔씩 원망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더라고.
사실 힘들었던 순간 꿨던 그 달콤한 꿈이 너무나 그리워.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할 지도 모르겠지만,
삶이 지치고 힘이 들 때 '모르겠다.'는 말이 입버릇처럼 나오는 요즘...
그때 꿨던 꿈에서 주고 받은 말처럼 다시 열심히 살아가려 노력중인데
그 때 꿨던 꿈이 재방송이라도 했으면
그래서 내 머리 속에 엄마라는 대상에 아쉬운 대상이 아닌 좋은 기억으로 남기고 싶은 생각이 계속 드네.
그만큼 그립다는 거겠지?
일단 하루하루를 열심히는 모르겠다만, 그래도 버텨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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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푸리야)
20240711140116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얘기함 동료지원 활동가 ‘푸리야’입니다.
엄마의 죽음에 대해 어른이 되어서 알고 충격과 함께 얼마나 외로우셨을지 그 마음에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특히 삶에 지치고 힘이 들어 붙잡고 있는 것이 다 부질없고 다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는 지금 님의 마음이 더 혼란스러우셨을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지금 님에게서 한줄기 빛을 봅니다. 이렇게 ‘얘기함’에 용기 내어 글을 남겨주심에도 감사드립니다. 방황 속에서도 한 자 한 자 꾹꾹 담아 썼을 지금 님에게서 저는 희망을 읽었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이라 기억도 희미한 엄마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글 쓰신 시간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엄마와 좋은 볼거리, 맛있는 음식들을 함께 나눌 수 없다는 현실에 진공 상태에서 살았을 그 긴 시간. 엄마의 목소리도 궁금하고, 지금 살아 계셨다면 내게 어떤 말을 먼저 할지 그 절실함 속에 얼마나 힘드셨을까? 뭔지 허공 속을 헤매며 왜 사는지 의미를 찾지는 않았을지? 8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그렇게 부유하듯 살아왔던 저를 지금 님에게서 보면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저는 무기력했습니다. 어떤 때는 막연하게 큰 슬픔 속에 빠져 일상이 힘들었습니다. 나를 완전히 덮어 버리는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실체는 모르겠고 차라리 쓰나미같이 저 끝까지 내동댕이쳐졌으면 하며 발버둥 쳐 보지만 결국 근원은 아들의 부재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상황이 생각나 지금 님께 토닥 토닥 제 마음을 전합니다.
혼자 남아 잘 살아왔는지, 앞으로 잘 살 수 있
[전체 내용은 글쓴이에게만 보입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얘기함 동료지원 활동가 ‘푸리야’입니다.
엄마의 죽음에 대해 어른이 되어서 알고 충격과 함께 얼마나 외로우셨을지 그 마음에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특히 삶에 지치고 힘이 들어 붙잡고 있는 것이 다 부질없고 다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는 지금 님의 마음이 더 혼란스러우셨을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지금 님에게서 한줄기 빛을 봅니다. 이렇게 ‘얘기함’에 용기 내어 글을 남겨주심에도 감사드립니다. 방황 속에서도 한 자 한 자 꾹꾹 담아 썼을 지금 님에게서 저는 희망을 읽었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이라 기억도 희미한 엄마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글 쓰신 시간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엄마와 좋은 볼거리, 맛있는 음식들을 함께 나눌 수 없다는 현실에 진공 상태에서 살았을 그 긴 시간. 엄마의 목소리도 궁금하고, 지금 살아 계셨다면 내게 어떤 말을 먼저 할지 그 절실함 속에 얼마나 힘드셨을까? 뭔지 허공 속을 헤매며 왜 사는지 의미를 찾지는 않았을지? 8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그렇게 부유하듯 살아왔던 저를 지금 님에게서 보면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저는 무기력했습니다. 어떤 때는 막연하게 큰 슬픔 속에 빠져 일상이 힘들었습니다. 나를 완전히 덮어 버리는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실체는 모르겠고 차라리 쓰나미같이 저 끝까지 내동댕이쳐졌으면 하며 발버둥 쳐 보지만 결국 근원은 아들의 부재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상황이 생각나 지금 님께 토닥 토닥 제 마음을 전합니다.
혼자 남아 잘 살아왔는지, 앞으로 잘 살 수 있는지 방황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홀로 남겨진 나는 어쩌라는 생각이 들어 가끔 원망하는 것도 공감합니다. 저도 미친 듯이 따지고 소리 질렀거든요. 그러나 아들은 답을 주지 않았지요.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는데 어떻게 방황을 안 하나요? 당연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우리의 마음은 엎치락뒤치락하지요. 저도 이런 상황이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마음임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임에도 이 현실을 인정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고 많이 힘들었습니다. 상실감에서 오는 고통과 슬픔은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 이겨낼 수도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오히려 지금 이렇게 고통스럽고 슬픈 것이 고통과 슬픔을 이겨내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다 보니 조금씩 위로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위로가 되었다고 아들을 잊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제가 아들을 이해하기로 했어요. 아들의 죽음을 ‘말할 수 있는 죽음’으로 얘기하기로 했어요.
이제는 방황하거나 고민하지 마세요. 이상한, 슬픈 생각도 하지 마세요. 그 순간 달콤한 꿈을 꾸며 누군가와 대화를 했거나 내 삶에 엄마가 드라마에서처럼 타임슬립을 했음이 분명한 것도 지금 님을 지켜준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할아버지의 기도/레이첼 나오미 레멘>에서는 우리가 깊은 슬픔을 털어내지 못하고 그대로 두면 뒤돌아본 대가로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처럼 과거라는 소금기둥 안에 영원히 갇혀버리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치유는 깊이 슬퍼하고 애통해하고 진정으로 슬픔을 표현했을 때 가능하다고 합니다. “깊이 슬퍼하고 애통해 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잊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또한 고통이 아닌 사랑의 마음으로 그 사람을 기억할 수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8년이 지나가는 이제야 어렴풋이 그래 맞아 하고 공감합니다.
지금 님이 엄마에 대한 기억을 좋게 남기고 싶은 것은 당연합니다. 그만큼 그리워하는 거고 이런 내마음 역시 말씀드렸듯이 옳고 당연한 겁니다. 살아남은 자의 가슴에 있다는 것은 항상 곁에 함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힘든 일이 생길 때 <얘기함> 이야기 공간에 “이랬어. 저랬어” 하며 이야기를 건네다 보면 엄마를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아울러 지금 님의 이 마음은 같은 슬픔을 안고 사는 다른 가족에게도 큰 위로와 치유를 줄 것입니다.
아울러 시간 여유가 되신다면 ‘자조 모임’에 참여하면서 같은 경험을 한 다른 유가족분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로 공감하고 위로하며 애도의 시간을 보냈으면 합니다. 자조모임에서 지금 님이 달ㄴ 유가족들에게 ‘수박과 들쥐'의 패랭이꽃이 '청춘' '오래오래 살라'는 뜻이라며 설명해주시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아름답지 않을까요? 엄마도 그렇게 살아가는 딸을 보며 평화로울 것입니다.
지금 님. 애쓰셨어요. 지금이라도 이렇게 <얘기함>에 찾아와 글을 남겨주신 것 정말 고맙고 이 애씀이 엄마에 대한 건강한 애도의 과정이 되었길 바랍니다.
무더운 날씨지만 공원도 걷고 열심히 출근하고 상담도 잘 받으며 이 여름에 지치지 마시고 엄마가 지켜준다는 믿음으로 우리 “함께–잘-살아가요.”
오늘도 얘기해요. 기억해요. 함께해요
살고 있는 거주지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정신건강전문가와 1:1 상담 가능합니다.
위치와 정보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홈페이지(https://www.kfsp.or.kr) 자살예방 기관검색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p.s. 아래의 정보는 즉각적인 전화 상담이 필요할 때, 도움 받으실 수 있어 안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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