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있잖아 나는 딸이면서 아빠가 왜 죽었는지도 모르고 생일도 모르고 기일도 몰라 ㅋㅋㅋ 엄마한테 물어보고 싶은데 쉽게 꺼낼 수 있는 얘기 아니니까 꺼내지도 못하겠어 엄마도 나한테 알려 준 지 얼마 안 됐어 나는 이미 어렸을 때 장례식장 기억 생생하게 나는데 엄마 때문에 계속 모른 척하고 있었지 근데 너무 어릴 때라 그런가 솔직히 아무렇지도 않았어 빈자리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엄마가 워낙 강하게 키워서 그런가 아빠 없어도 한 번도 무시당하거나 주눅들었던 적 없었어 솔직히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거잖아? 물론 우리 가족이긴 하지만 아무튼 아빠 인생이었는데 뭐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는 거고 어쩌겠어 그게 운명이었나 보지 아빠 그때 30대였는데도 많이 아팠다며 그래서 그냥 자연의 섭리라고 여기고 여태까지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어 딸인데 이렇게 생각해서 미안해 7살 때 이후로 기억도 없는데 요즘은 왜 이렇게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아빠가 우리 곁에 있었으면 좀 달라졌지 않았을까 싶어서 그래도 나는 어릴 때 기억 생생하게 생각나 나랑 둘이 놀이터 가서 놀아준 거 어릴 때인데도 기억나고 엄마랑 바다 간 것도 기억나고 내가 맨날 인형 사달라고 조른 것도 기억나고 아빠랑 교회 간 것도 기억나고 소풍 갈 때 새벽부터 일어나서 엄마랑 같이 도시락 싸준 것도 기억나고 아빠가 나한테 편지 써 준 것도 기억나 너무 어려서 그땐 아빠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것도 모르고 매주 수요일마다 통화할 때 내가 맨날 인형 사달라고 했는데 아빠가 맨날 사준다고 약속하고 결국 못 사줬지 몇 년 전까지는 기억났는데 이제 아빠 목소리도 기억 안 나 아빠는 내 생각 했을까? 내가 기억이 날까? 아빠 근데 사후세계 진짜 있어? 내 이름도 기독교 이름이고 우리 집안 완전 모태신앙이잖아 나도 어릴 때는 그냥 가족들 따라 열심히 믿고 다녔는데 지금은 솔직히 모르겠어 아빠가 교회 열심히 다니라고 했는데 교회 안 간 지 엄청 오래됐어 아빠 생각하면 사후세계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는데 솔직히 다 허상 같아 그러면서 편지 쓰고 있다는 게 웃기지 ㅋㅋㅋ 지금도 그냥 하소연할 데가 없어서 힘들 때마다 아빠한테 편지 쓰는 거야 나 평소에는 절대 티 안 내거든 엄마도 힘들고 내 주위에 더 힘든 애들 많은데 나까지 맨날 울고 힘든 티 내고 그러면 미안하잖아 이런 거 말할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적어 놓으면 진정도 되고 생각 정리가 되더라고 나 그리고 벌써 고3이다 내년이면 성인이야 아빠 그래서 솔직히 지금 너무 힘들어 고등학교 1학년 때 인문계 다닐 때 6학년 때 나 심하게 왕따시킨 애랑 같은 반 됐어 고작 6학년 땐데 뭐 어떻냐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중학교에선 성격도 밝게 바꾸고 친구도 많이 사귀고 행복하게 보냈는데 고등학교에서는 싸운 친구들 때문에 걔한테 또 혼자 다니는 모습 보여주는 게 너무 비참했어 한 명 때문에 소문도 이상하게 나서 다 나 투명인간 취급하고 제일 친했던 친구도 나 배신하고 그래서 우울증도 너무 심해지고 성적도 계속 떨어졌어 당연히 선생님들도 나 한심하게 보고 무시하고 한심한 거 맞으니까 그냥 죽고 싶었어 그래서 엄마도 자퇴하라고 했는데 학교 그만두면 후회할 것 같아서 2학년 때 급하게 특성화고로 전학 왔어 나 진짜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아서 많이 극복하고 억지로 열심히 살았어 좀 힘들었지만 대회 나갈 때마다 교내상도 많이 받고 밤새우면서 공부해서 성적도 엄청 오르고 자격증도 많이 따고 주말에도 맨날 학원 가고 새로 사귄 친구들도 다 좋았고 선생님들도 나 열심히 한다고 좋아했어 나 그래서 장학금도 받았어 아빠 근데 지금은 왜 이렇게 모든 게 의미없는 짓 같을까 내가 어떤 공부를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그냥 인문계에서 참고 대힉 갈걸 아니면 차라리 자퇴하고 검정고시나 볼걸 1학년 때 성적이 발목 잡고 나름 학종 준비한다고 열심히 했는데 쌤들은 대학 잘 모르니까 생기부는 개판이고 이도저도 아니라서 괜히 전학 왔나 싶고 매일 우울해 하고 싶었던 공부는 맞는데 솔직히 핑계였던 것 같아 그래서 그냥 도망칠 곳이 필요했어 얻은 것도 있지만 요즘은 잃은 게 더 많은 기분이라 그냥 미래만 생각하면 막막해 어제는 신한은행 지원하고 왔어 고졸채용이라 엄청 희박해서 경험상 넣은 거지만... 올해 공기업도 계속 지원할 거야 근데 만약에 내가 운좋게 좋은 회사 붙어도 잘 버틸 수 있을까 아빠 그냥 이렇게 힘들 때마다 너무 보고싶어 꿈에 한번만 나와달라고 했는데 왜 이상한 꿈에만 나오는 거야... 나 그래도 이제 좀 괜찮아졌으니까 그만 울고 진정할게 이럴 시간에 더 열심히 해야지 아빠 나 꼭 회사든 대학이든 합격할 거고 다시 쉽게 안 무너질게 결과가 어떻든 내가 할 수 있을만큼 최선 다해서 열심히 해볼테니까 아빠가 응원 좀 해 줘 나중에 꼭 보자 나 당당하게 합격하고 엄마랑 동생이랑 같이 아빠 보러 갈게 거기서는 아프지말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