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우리는 가슴이 갈기갈기 찢겨도
아픈 소리를 낼 수가 없어
네가 겪었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테니까..
어제도 살아 생전 네 마지막 모습에 대해 들으면서 그 장면을 떠올려봤단다
엄마 안녕히 가세요...
그 말을 남기고 넌 떠나갔지
얼마나 사는 게 고통이었으면 아무말 남기지 않고, 미련없이 갔을까
엄마 마음 편하시라고 도서관에 데려다달라고 했을 가엾은 내 동생
네가 떠난 뒤 느끼는 다른 감정은 솔직히 너무 같잖고 쉽구나
기쁘고 슬프고 그런 감정들에 무뎌져 하루하루 그런대로 살고 있는데 우린 정말 괜찮은걸까
넌 이제 고통이 영원히 없는 게 맞는거지? 그렇지?
미안하고 또 미안해
누나가 너의 든든한 그늘이 되어주었다면 그렇게 외롭게 세상을 등지진 않았을텐데
부디 잘 있거라 부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걸었을 생명의 전화, 경주로 여행 가자던 아빠, 그 날 밤에 검색했던 자살. 그래, 이별여행이었던 거야. 마지막 날, 나에게 몇 번이나 건넸던 " 잘 갔다와 " 식당에서 한숨과 함께 기울였을 마지막 술잔. 그리고, 시체가 된 아빠 눈에 고여있던 물. 고여있던 물.
안녕 여보
산 사람은 살아야한다고 주위 사람들도 당신 얘기하는걸 좋아하지 않으니
난 요새 주로 혼잣말이 늘었어...
벌써 2019년이야 여보, 나는 한살이 더 먹었는데 당신은 이제 나이를 먹지 않는구나...
같이 떡국을 먹었다면 좋았을텐데...이럴줄 알았다면 작년 새해에 떡국 해먹자고 할걸...
참 웃프다, 당신은 이제 늘 영원히 젊고 예쁜나이에서 멈춰섰구나...
나는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늙어가겠지...
우린 다섯살 차이인데 이젠 네살 밖에 차이가 안나니까...내년은 세살차이, 내후년은 두살 차이...
언젠간 나도 당신이 떠난 나이가 되겠지...?
그때쯤은 나도 당신 삶의 고통을 좀 더 이해하게 될까?
당신이 떠나기 얼마전에 내게 했던 고백들도, 그리고 미처 나에게 다 하지 못했을 말도
매일을 되새겨본다. 때론 너무 화가나고 때론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당신을 보낸 49재, 길상사에서 청명했던 하늘아래 선선한 초겨울 햇살을 맞으니
이제 당신은 마음의 짐을 훌훌털고 편안하게 쉬고 있단 생각이 들더라...
그리곤 이 슬픔과 원망, 미움, 미안함, 그리움도 내 안에 꾹꾹 담아 두어야겠단 다짐을 했는데
한국에선 유가족으로 살아가기가 이렇게 쉽지 않다는걸 조금씩 실감하면서
내가 당신에게 어떤 감정을 갖고 살아가야하는지 너무나 혼란스러운 요즘이야...
나는 정신분석 치료를 시작했고, 좋은 치료사님을 만났는데 당신도 그럴 기회가 있었다면,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알아챘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러지 못해서 너무 많이 미안해 여보...
새해 복 많이 받고 구정에 인사하러 갈게, 조금만 기다려